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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문화유산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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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산성; 전성산성; 전성산산성(城山山城; 前城山城; 前城山山城)

 
  • 구분유적
  • 시대고구려 후기
  • 문서번호S000775
  • 위치(출토지)遼寧省 庄河市 城山鎭 沙河村 萬德屯
  • 지역대련(大連市)
  • 유형성곽>산성
  • 형태사항前城 둘레 3,112.5m 22점 
 

출토지

 

요녕성 장하시 성산진 사하촌 만덕둔(遼寧省 庄河市 城山鎭 沙河村 萬德屯)

 

연대

 

404년 광개토왕이 요동을 점거한 뒤부터 당나라가 고구려를 정벌하기 전까지. 590년 축조 시작, 591년 완성(王禹浪, 王文軼, 2011,「大連地區的高句麗山城」『黑龍江民族總刊』 2011-6).

 

조사내용

 

 
:1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2005대련시문물고고연구소
(大連市文物考古硏究所)
과거에도 문물부는 여러 차례 조사를 진행했었음. 이번 조사는 11월~12월에 걸쳐 前城과 後城을 포괄하는 城山山城의 둘레, 뻗은 방향, 구조 및 분포 상황 등에 대한 조사와 측량을 진행하였음.
‘大連市文物考古硏究所, 2006, 「大連城山山城2005年調査報告」『東北史地』 2006-4’에 발표하였고, 市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됨.

 

구조특징

 

모두 6개의 성문이 있으며, 북부의 고지대에 점장대와 내성을, 서쪽 구간에 2개의 요망대를, 동쪽 구간에 1개의 치를 설치하였음. 내성 중부와 남부는 비교적 평탄하고 완만하며, 저수지, 제방(洩水壩), 건축유적 등이 있음.
성내에서 일정 수량의 고구려시기의 철기, 토기편, 기와편 및 요금시기의 철기, 청대의 동전 등이 출토됨. 성내에 또 명대 만력연간에 조영한 법화사 하원, 민국 연간에 조영한 법화사 상원과 도교건축인 오룡궁 등이 있음.
성벽은 대부분 산등성이를 따라 분포하는데, 일부는 산등성이 아래의 제2·3등고선상에 분포하며, 주로 남쪽과 서쪽 구간에 있음. 외벽은 성돌을 가지런히 쌓아올렸으며 내측은 산비탈에 연결해 쌓았는데 산비탈의 경사도에 의지하여 수직으로 벽체를 쌓아올려 마치 산비탈을 보호하는 축대처럼 보임. 이러한 양상은 C, D구간에서 뚜렷하게 나타남. 성벽 내측은 지면에서 약간 솟은 까닭에 일반적으로 산정상과 높이가 거의 같음.
성벽은 모두 현지의 화강암을 가공하여 쌓았음. 벽체 외면은 가공한 쐐기형돌로 축조하였는데, 입면은 圓角長方形과 방형(현지인은 ‘苞米粒’형이라고 표현함)이고, 평면은 삼각형이며, 바깥쪽 끝은 넓고, 안쪽 끝은 뾰족함. 벽체 내측은 거칠게 다듬은 마름모꼴 석재(능형석)를 사용하였음. 쐐기형 돌과 능형석을 층층이 서로 교차시켜 쌓아올렸는데, 서로 맞물리게 하여 마치 개 이빨이 맞물려있는 것과 같음. 내부에 흙이나 쇄석을 채워넣지 않아 속칭 ‘干打壘’ 쌓기법 혹은 ‘干揷石’ 쌓기법이라 하는데 바닥에서 위쪽으로 비스듬히 들여쌓아 비닥은 럽고 꼭대기는 좁음.
1호문(정문, 속칭 남문)을 기점으로 하여 시계 역방향으로 A, B, C, D 4구간으로 나누고 매 구간을 세분하여 시작점과 종착점을 알파벳 소문자로 표시하여 성벽의 현황을 조사함. A구간은 산성의 동쪽 구간(a-b)이고, B구간은 산성의 북쪽 구간(d-e)으로 비교적 짧음. C구간은 산성의 서쪽 구간(e-i)으로 지세가 서남-동남 방향으로 뻗어있음. D구간은 산성의 남쪽 구간(i-a)으로 지세의 기복이 크며, 성벽이 구불구불함.
A구간(a-d) 성벽은 전체 길이 996.5m이고, 성문 4개와 치 1개가 있음. a-b구간은 기본적으로 남북방향으로, 길이 476.5m임. 2호문과 치 하나가 있음. 원 벽체의 잔고는 2-9.5m인데, 대부분 4-6m 사이이고 성벽의 대부분은 복원되었음. b-c구간은 길이 312m로, b지점에서 서쪽으로 꺾이고 또 북쪽으로 꺾여 半弧形을 띠고, 3호문이 있음. 원 벽체의 잔고는 1.6-5m로 대부분 3-4m 사이임. c지점의 기점은 4호문이며, 내성의 출입구임. c-d구간은 북편동 방향으로 길이 205m임. 원 성벽의 잔고는 0.5-8.5m로 대부분 2-4m 사이임.
B구간(d-e)성벽은 성벽의 가장 북쪽에 있으며 활모양(弧形)을 띰. 성벽이 가장 낮고, 전성산에서 해발이 가장 높은 곳임. 길이 30m로, 그 중간 구간에 원 벽체가 23층 남아 있는데, 잔고는 3.5m임.
C구간(e-i) 성벽은 산성의 서쪽에 위치하며 서남-동북 방향으로 전체 길이 1176,5m임. 산세가 가파르며, 소나무가 주로 심어져 있음. f지점은 내성의 기점이며, 5호문이 위치함. e-f구간의 일부 성벽은 내성의 성벽이면서 외성의 성벽이기도 함. 길이는 233m임. 극히 일부 구간에서 자연 암석을 성벽으로 삼았는데 길이는 0.5-5m로 대부분 1m 정도임. 사이에 5호문이 있음. 해당문은 C구간 성벽의 유일한 성문일 뿐만 아니라 내성의 출입구이기도 함. c, d, e, f를 연결한 선의 범위 내에 내성과 점장대 등의 유적이 있으며, 전체 성에서 가장 높은 곳임. 이 구간의 성벽 전체는 복원된 것임. g지점은 요망대로, 속칭 소장대(梳妝臺)라고 하며, 주위를 둘러싸는 벽체를 따라 설치하였음. f-g구간은 길이 445m로, 원 벽체의 잔고는 0.2-2.8m인데 대부분 1m 이하임. h지점은 또 하나의 요망대로 속칭 ‘大蠹旗’라 함. 그 부근의 성벽에 트인 곳이 있는데 便門으로 생각됨. i지점은 C구간의 가장 남쪽 지점이며, g, h 지점의 성벽과 유적을 수리, 복원한 것을 제외하면 기타 일부는 아직 복원되지 않았음. g-h구간의 일부는 자연 암벽구간으로 길이는 350m임. 원 벽체의 잔고는 0.5-2.5m로 대부분 0.5-1.5m 사이임. h-i구간은 길이 138.5m로, 벽체의 잔고는 0.5-3.5m이며, 대부분 1m 이하임.
D구간(i-a) 성벽은 산성의 남쪽에 위치하며, 전체 길이 1,046m임. 성벽은 대체로 구불구불하며, 험요함. 산세는 비교적 가파르고 성벽이 계곡을 통과하며, 산능선의 기복은 완연함. 특별히 험요한 곳 혹은 거석이 돌출해 솟아있는 곳은 곧 천연병풍으로 삼아 성벽을 만들었음. 산 아래는 대체적으로 계곡이며, 지면에 크기가 서로 다른 화강암이 편재해 있는데, 산 위에는 소량이 산재하고 있음. 사이에 6호문이 있음. i-j구간은 동서방향으로 길이는 651.5m이고, 잔고는 0.5-4m인데 대부분 1-3m 사이임. j-a구간은 동북-서남방향으로 길이 251.5m이고, 잔고는 1-4.5m인데 대부분 1m 내외임. 6호문에서 a지점까지의 성벽은 대부분 복원되었으며, 복원되지 않은 곳의 성벽의 동쪽 구간은 비교적 보존상태가 양호함. 잔고는 최고 9m, 최저 0.2m로, 대부분 0.5-3m 사이임. 성벽의 너비는 일정하지 않지 않은데, 일반적으로 3m 내외이며, 최대 4-4.6m임.
출토 유물은 주로 고구려 시기의 철기가 대부분임. 낫, 칼, 창, 추, 수레바퀴 차관, 도끼, 못, 허리띠 걸쇠, 자귀 등이 있음. 그 다음으로 토기가 많으며, 금대의 쟁기도 출토됨. 다른 곳에서는 소량의 석기와 청대 동전이 발견되었음.

 

역사적 의미

 

고구려의 석성(石城)설 또는 적리성(績利城)설이라는 견해로 나뉨(大連市文物考古硏究所, 2006, 「大連城山山城2005年調査報告」『東北史地』 2006-4).
성산산성은 고구려시기의 대형산성으로 전성과 후성을 합쳐 부르는 성곽임. 가까운 거리에 분포한 ‘자매성(姉妹城)’의 형식으로 고구려 산성 중에는 그리 많이 보이지 않는 형식임. 성산산성은 고구려산성과 공통적인 특징을 갖고 있음. 즉 높은 산의 굽은 골짜기 상에 축조했다는 점인데 성벽은 산능선을 따라 뻗어있어 천험의 지세를 이용해 축조하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지키기는 쉽고 공격하기는 어려운 요새임.
전성의 규모, 구조, 축조방식 및 출토유물 등 여러 측면을 분석해 볼 때, 축조 시기는 고구려 후기, 즉 404년 광개토왕이 요동을 점거한 이후부터 당나라가 고구려를 정벌하기 전까지에 해당하며, 전성은 후성보다 앞서 축조되었음. 전성의 치와 요양의 암주성산성(巖州城山城)의 치는 유사함. 전성의 ‘성중성(城中城)’인 내성은 2개의 요망대가 따로 세워져 있고 성문, 대형 저수지 및 성벽의 축조 기법 등이 규격화 되어 있고 완전하여 전성기의 고구려 산성임에 틀림없음.
동진 의희(東晋 義熙) 연간에 고구려가 전성산(前城山)에 성벽을 축조했다고 보는 견해가 있음. 또한 590년에 고구려 평원왕이 수의 침공에 대비하여 방어체계를 강화할 때 전성을 축조하기 시작하여 591년 완공하였다고 보기도 하는데, 규모나 구조로 보아 성립되기 어려운 견해임.
647년 당군이 산동반도의 래주(萊州)에서 바다를 건너 고구려의 석성을 함락시키고 공격한 바 있는데, 성산산성을 석성으로 보는 견해와 적리성(績利城)으로 보는 견해가 있음. 보고자는 적리성(績利城)으로 비정함.

 

자연환경

 

요녕성 장하시 서부 상산진 사하촌 만덕둔(遼寧省 庄河市 西部 城山鎭 沙河村 萬德屯) 서북 1㎞의 城山 위에 위치함. 전성(前城)과 후성(後城) 2기의 성을 포괄하여 성산산성(城山山城)이라 칭함. 서쪽으로 벽류하(碧流河)와 마주보고 있으며, 남쪽으로 약 25㎞ 거리에 황해가 흐르고, 동남쪽 약 35㎞ 거리에 장하시가 자리하고 있음. 벽류하는 북에서 남으로 흐르다가 황해로 유입되는데 보란점시(普蘭店市)와 장하시(庄河市)의 경계가 되며, 대련지구의 최대 담수 하천임.
전성산(前城山)의 최고 지점은 해발 311m임. 서, 북, 남부의 산세는 비교적 가파르며 동부는 약간 완만함. 암석은 주로 화강암이고, 상수리나무를 주로 심었으며, 일부 구간에 소나무 종이 심어져 있음.
산성은 기본적으로 해발 200m 이상의 산능선상에 축조하였음. 북고남저, 서고동저로 북부는 협장하고, 남부는 개활함. 기본적으로 남북방향으로 분포함.

 

유물정보

 

문확석(門確石) 1점, 토기편(土器片) 2점, 叉狀器 1점, 철제 끌 1점, 철정(鐵釘) 1점, 彎鉤形器 1점, 철추(鐵錐) 2점, 철도끼(鐵斧) 2점, 철겸(鐵鎌) 1점, 차관 1점, 양공철기(兩孔鐵器) 1점, 대구(帶具) 2점, 철모(鐵矛) 1점, 철촉(鐵鏃) 1점, 철 호미(鐵鋤) 2점, 철 솥편(鐵釜片) 1점

 

참고문헌

 

· 譚其驤, 『中國歷史地圖集釋文匯編』 東北卷, 中央民族學院出版社, 1988
· 陳大爲, 「遼寧境內高句麗遺跡」『遼海文物學刊』 1989-2, 1989
· 王禹浪·王宏北, 『高句麗·渤海古城址硏究匯編』 (上), 哈爾濱出版社, 1994
· 王綿厚, 「鴨綠江右岸高句麗山城硏究」『遼海文物學刊』 1994-2, 1994
· 陳大爲, 「遼寧高句麗山城再探」『北方文物』 1995-3, 1995
· 馮永謙, 「高句麗城址輯要」『北方史地硏究』, 中州古籍出版社, 1996
· 許明綱, 「大連地區高句麗四座山城略考」『博物館研究』 1996-1, 1996
· 許明綱, 「大連地區高句麗四座山城略考」『博物館研究』 1996-1, 1996
· 馮永謙, 「高句麗城址輯要」『高句麗渤海硏究集成』 高句麗 卷(三), 哈爾濱出版社, 1997
· 王綿厚, 『高句麗古城硏究』, 文物出版社, 2002
· 張翠敏, 王宇, 「大連城山山城2005年調査報告」『東北史地』 2006-4, 2006
· 王禹浪·王文軼, 『遼東半島地區的高句麗山城』, 哈爾濱出版社, 2008
· 國家文物局 主編, 『中國文物地圖集』 遼寧分冊(下), 西安地圖出版社, 2009
· 王禹浪·王文軼·王宏北, 「遼東半島高句麗山城槪述」『黑龍江民族叢刊』 2010-2, 2010
· 王禹浪·王文軼, 「大連地區的高句麗山城」『黑龍江民族叢刊』 2011-6,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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