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림 남성자고성(吉林 南城子古城 ; 東團山平地城)
출토지
江南公社 永安大隊에 위치한 동단산의 동남쪽 산자락의 평지.
연대
원시-부여(한)-고구려-발해-요·금시기
조사내용
연도 | 조사기관 | 조사현황 |
1952년 8월 | 추길태(鄒吉太, 吉林省人民政府敎育局) | · 8월 보름 동안 吉林市郊區 문화 유적 가운데 토성자, 동단산, 용담산 등 16곳을 조사함. |
1960년 | · 1960년 길림지구 문화재 일제조사 결과 吉林市郊區의 용담산성, 삼도령성지, 동단산유적, 영길현의 토성자성지, 漂兀河山城, 교하현의 拉法城址를 고구려 성으로 확정함. | |
1973년 | 길림시도서관 문물조(吉林市圖書館 文物組) | · 吉林市圖書館 文物組가 길림성문물국의 허가를 얻어 동단산 유적을 시굴하여 고구려 시대의 유물을 포함하여 많은 유물을 조사하였음. · (길림성) 문물고고공작대는 동단산 기슭의 평지성(남성자고성) 내부에서 발해유물로 판단되는 유물을 채집하였음. 대체로 건축재료와 토기편이 많음(8. 상세내용 출토유물 참조)[吉林市地方志編纂委員會, 1994]. |
2001년 6월 ~ 10월 2002년 7월 ~ 11월 | 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길림시박물관(吉林市博物館), 길림시문물관리처(吉林市文物管理處) | · 길림성 성내의 동부에 위치한 동단산 유적(동단산유지)을 조사함. 유적은 세 개 부분 즉 동단산 산성(A구역), 동단산 평지성(B구역)과 성 주변 유적(C구역)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면적은 약 200,000㎡임. ① 2001년의 발굴 · 발굴면적은 1,500㎡임. · A구역(동단산 산성)과 B구역(동단산 평지성 ; 남성자고성)의 두 개 구역으로 나누어 발굴이 이루어졌음. · B구역(동단산 평지성 ; 남성자고성)에는 10*10 피트를 9개 설치하였으며 노출면적은 900㎡임. · 지층 퇴적은 5개 층으로 나눌 수 있으며, 그 중 2, 3층은 明代 문화층이고, 4층은 부여(漢·魏시기) 문화층임. 부여(漢·魏시기)문화층에서는 재구덩이(灰坑) 4기가 발견되었음. · 2001년 발굴에서는 각종 유물 400여 점이 출토되었음. ② 2002년의 발굴 · 2002년 발굴은 동단산유적 3개년 발굴계획이 두 번째로, 발굴은 A구역(동단산 산성)과 B구역(남성자고성 ; 동단산 평지성)의 3개 지점에 대해 진행되었음. · B구역(동단산 평지성 ; 남성자고성)의 발굴 면적은 500㎡임. · 두 지점에서 발굴을 진행하였는데 주로 성벽 절개발굴을 통해 동단산 평지성의 건축연대와 축성방식 등 상관문제에 대하여 보다 자세한 조사를 실시하였음. |
구조특징
현존하는 성벽은 대체로 두 시기에 걸쳐 축조된 것. 전기는 한 층 한 층 다져서 만든 판축으로, 판축 두께는 평균 6-8cm. 후기는 황토를 쌓아 올려 축조한 형태.
역사적 의미
(1) 부여 전기 도성의 평지성설
성 내부는 농경지로 사용중이며, 원시, 한, 고구려 시대의 유물외에도 발해시대의 유물이 많이 있음. 남성자산성 즉 동단산평지성은 여러 시대에 걸쳐 연용되었던 고성으로, 처음에는 古濊城으로서 부여 전기 왕성이 되었고, 그 이후에는 고구려가 점령하였으며, 발해 시대에는 다시 발해국의 주요 主治所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됨.
(2) 속말말갈의 중심지인 발해의 涑州城설
남성자고성은 부여 전기 왕성의 옛터를 연용하여 축조한 것임. 해방전 동단산 동남쪽 기슭의 “남성자”내에서 고고학자가 일찍이 발해왕국의 건축재료를 채집하였음. 남성자고성이 자리한 이곳의 지리환경으로 볼 때 문헌에 기록된바 속주의 지세와 서로 부합된다고 설명할 수 있음. 『신당서』발해전에 기록된 바 “涑沫江은 즉 粟末水”로 속말수는 즉 지금의 북류 구간의 제2 송화강임. 속주는 이 강을 이름지어 붙여진 주임. 여기서 출토된 치미로 보아 회색의 기와와 꽃문양의 벽돌의 형태가 발해 상경 용천부에서 출토된 유물과 기본적으로 같다. 그러므로 당시 이 곳에 비교적 큰 관아건축이 있었던 곳임을 증명한다. 이에 근거해 동단산 기슭의 “남성자”는 당나라시기 발해국의 獨秦州의 소재지인 涑州城 유적이라고 추단할 수 있음[吉林市地方志編纂委員會, 1994].
성 내부는 농경지로 사용중이며, 원시, 한, 고구려 시대의 유물외에도 발해시대의 유물이 많이 있음. 남성자산성 즉 동단산평지성은 여러 시대에 걸쳐 연용되었던 고성으로, 처음에는 古濊城으로서 부여 전기 왕성이 되었고, 그 이후에는 고구려가 점령하였으며, 발해 시대에는 다시 발해국의 주요 主治所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됨.
(2) 속말말갈의 중심지인 발해의 涑州城설
남성자고성은 부여 전기 왕성의 옛터를 연용하여 축조한 것임. 해방전 동단산 동남쪽 기슭의 “남성자”내에서 고고학자가 일찍이 발해왕국의 건축재료를 채집하였음. 남성자고성이 자리한 이곳의 지리환경으로 볼 때 문헌에 기록된바 속주의 지세와 서로 부합된다고 설명할 수 있음. 『신당서』발해전에 기록된 바 “涑沫江은 즉 粟末水”로 속말수는 즉 지금의 북류 구간의 제2 송화강임. 속주는 이 강을 이름지어 붙여진 주임. 여기서 출토된 치미로 보아 회색의 기와와 꽃문양의 벽돌의 형태가 발해 상경 용천부에서 출토된 유물과 기본적으로 같다. 그러므로 당시 이 곳에 비교적 큰 관아건축이 있었던 곳임을 증명한다. 이에 근거해 동단산 기슭의 “남성자”는 당나라시기 발해국의 獨秦州의 소재지인 涑州城 유적이라고 추단할 수 있음[吉林市地方志編纂委員會, 1994].
자연환경
吉林市 郊區 江南公社 永安大隊에 위치한 동단산의 동남쪽 산자락의 평지에 위치함.
유물정보
남성자고성 내부에서 원시, 漢, 고구려 시대의 유물 외에도 발해시대의 유물 잔편이 많이 흩어져 있음. 동단산 기슭의 평지성(남성자고성) 내부에서 발해유물인 암키와(板瓦) 4점, 수키와(筒瓦) 2점, 토기 구연부 1점 채집. 제4층 부여(漢·魏시기)문화층 재구덩이(灰坑) 4기에서 호(深腹筒形罐), 동이(니질 회색 陶盆) 등과 격자문(方格文), 승문(繩文) 토기편 등이 출토. 부여(漢·魏)시기의 전형적인 생활용기인 斜頸壺, 柱把豆와 深腹筒形罐 등 출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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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吉林省文物志編委會, 1984, 『吉林市郊區文物志』, 吉林文史出版社
· 李健才, 1991, 「唐代高麗長成和扶餘城」『民族硏究』1991-4
· 國家文物局, 1993, 『中國文物地圖集』吉林分冊, 中國地圖出版社
· 吉林市地方志編纂委員會, 1994, 『吉林市志文物志』, 吉林文史出版社=남성자고성, 발해유적으로 나옴
· 王禹浪·王宏北, 1994, 『高句麗·渤海古城址硏究匯編』(上), 哈爾濱出版社
· 東潮·田中俊明, 1995, 『高句麗の歷史と遺跡』, 中央公論社
· 王綿厚, 2002, 『高句麗古城硏究』, 文物出版社
· 이종수, 2003, 「扶餘城郭의 特徵과 關防體系硏究」『白山學報』67
· 唐音·翟敬源·張寒冰, 2003, 「吉林市東團山漢魏時期及明代遺址」『中國考古年鑑』, 文物出版社
· 唐音·丁宏毅·劉利, 2004, 「吉林市東團山漢魏時期遺址」『中國考古年鑑』, 文物出版社
· 李新全, 2004, 「關于高句麗座兩土城的一点思考」『東北史地』2004-3
· 李鍾洙, 2004, 『夫余文化硏究』, 吉林大學 박사학위논문
· 唐音, 2008, 「東團山遺址」『田野考古集粹』, 文物出版社
· 干麗群·賈素娟·韓安生, 2010, 「以東團山遺址出土爲例試析漢文化對夫餘文化的影向」『東北史地』4
· 국립문화재연구소, 2012, 「중국동북지역 고고조사 현황- 『중국고고학연감』(2000-2010)을 중심으로」[길림성·흑룡강성편]
· 양시은, 2013, 『고구려성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 吉林省文物志編委會, 1984, 『吉林市郊區文物志』, 吉林文史出版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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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吉林市地方志編纂委員會, 1994, 『吉林市志文物志』, 吉林文史出版社=남성자고성, 발해유적으로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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