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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문화유산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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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림 용담산성(吉林 龍潭山城 ; 龍潭山山城)

 
  • 구분유적
  • 시대부여, 고구려 중기, 금
  • 문서번호40-D2-03
  • 위치(출토지)용담로(龍潭路)
  • 지역길림(吉林市)
  • 유형성곽〉산성
  • 형태사항성벽길이 2396m   
 

출토지

 

길림시 용담구 용담로 용담산성
 

연대

 

부여, 고구려 중기, 금
 

조사내용

 

 
:1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1920년대 말기에서 30년대 초기이문신(李文信, 考古學者)· 1920년대 말기에서 30년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용담산성에 대하여 조사를 진행하고 보고서를 발표하였음.
1952년 8월추길태(鄒吉太, 吉林省人民政府敎育局)· 8월 보름 동안 吉林市郊區 문화 유적 가운데 토성자, 동단산, 용담산 등 16곳을 조사함.
1954년 7월이문신(李文信), 강가흥(康家興) 등· 용담산, 토성자와 그 부근의 유적을 조사함.
1956년이문신(李文信)· 당시 동북인민대학(지금의 길림대학) 역사학과 학생들을 인솔하고 동단산, 용담산, 토성자 등지에서 1,000여 가지의 표본 유물을 채집하였음.
1958년 가을 · 1958년 가을에 길림시 공원관리처에서 저수지의 진흙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니질의 흑회색 토기(陶罐) 3점, 호(陶壺) 1점, 6개의 파수가 부착된 철제 솥(六耳鐵鍋) 1점, 2개의 고리가 부착된 철제 솥(雙環耳鐵釜) 1점을 출토하였음[董學增, 1986 ; 吉林市地方志編纂委員會, 1991].
1960년 · 1960년 길림지구 문화재 일제조사 결과 吉林市郊區의 용담산성, 삼도령성지, 동단산유적, 영길현의 토성자성지, 漂兀河山城, 교하현의 拉法城址를 고구려 성으로 확정함.
· 1961년 길림성인민위원회는 용담산성을 길림성문물보호단위로 공포함[吉林市地方志編纂委員會, 1991]
1962년 여름과 가을 사이길림성박물관(吉林省博物館 ) 장만정(張滿庭), 진상위(陳相偉), 이무걸(李茂杰), 유훤당(劉萱堂), 한숙화(韓淑華), 동학증(董學增)· 길림성급 문물보호단위인 용담산의 고구려산성 유적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였음
1970년대 · 1974년 10월 樺甸縣 文體局은 용담산 고구려 산성 유적을 보수하고 한뢰 주변의 파괴된 돌들을 복구하고 수뢰 북벽 동쪽 끝에 있는 배수구를 정리하였음.
· 1974년 11월에는 북한 문물보호고찰단이 용담산고구려산성을 조사하였음.
· 1977년 길림시 園林處에서 용담산성의 한뢰와 수뢰를 보수함.
1981년 · 15명으로 구성된 일본의 고고학자들이 용담산 고구려 산성을 답사하였음.
1982년동학증(董學增), 길임시교구문화관 문지(吉林市郊區文化館 文志), 길임성박물관 동조권(吉林省博物館 董朝權), 구기(仇起), 김려화(金麗華)· 용담산성에 대한 재조사를 진행하였으며, 동시에 용담산성 부근의 三道嶺子山城과 東團山山城에 대한 조사도 진행하여, 과거 잘못 기재한 부분과 누락된 것을 바로 잡고 아울러 새로 발견된 사실을 보고함.
1983년 4월 ~ 1985년 말길림시 문물관리위원회(吉林市文物管理委員會)· 길림시 문물관리위원회를 주축으로 7개 縣과 區의 문화재 일제조사와 문물지 편찬이 이루어졌음.
· 이 조사에서 정리된 성들은 여러 시기에 걸친 것으로 총 63개가 조사되었는데, 이 때 새로 고구려 성이라고 밝혀진 것들이 많았음. 당시 고구려 성으로 조사된 것은 문물지의 표에 따르면, 용담산성, 동단산산성, 삼도령자산성, 랍법소립자산성, 횡도자남산산성, 육가자동산산성, 성자구패성, 지방구패성의 10개의 성곽이며 표에는 나와있지 않으나 본문 설명에 고구려 성으로 나와있어 표를 만들때 누락된 것으로 보이는 대마종령산성, 표에도 나와있지 않고 본문에도 요금시대의 성이라고 결론짓고 있으나 고구려 시기의 토기편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관지고성도 고구려성에 포함시킬 수 있음.

 

구조특징

 

산등성이를 따라 축조된 성벽의 길이가 2,396m에 이르고 평면은 불규칙한 형태를 띤다. 대개의 성벽은 황토와 깬 돌을 섞어 혼축하였는데, 서측의 일부 구간은 황토만으로 판축하였다. 정문에 해당하는 서문은 너비가 14m인데, 반산공로(盤山公路)와 연결된다. 문의 양측 단면에서 토석혼축의 축조방식을 살펴볼 수 있다. 이 밖에도 남쪽과 북쪽에 문터가 하나씩 남아 있다. 성벽의 4면에는 평대가 각기 세워져 있는데, 남쪽의 것이 가장 높아 ‘남천문(南天門)’이라고 부른다. 이곳에 오르면 송화강이 용담산 남쪽 평원으로 흘러들어오는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산성의 서북쪽 귀퉁이에는 ‘용담’이라 부르는 저수지가 있다. 다듬은 돌로 저수지의 벽면을 쌓아올렸는데, 성벽을 만들면서 동시에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서남 귀퉁이 산등성이 가까운 곳에는 ‘한뢰(旱牢)’라고 부르는 저장시설이 있다. 평면의 형태는 원형에 가까우며 직경이 10.6m에 이른다. 산성의 군사물자를 저장하던 곳이다.
 

역사적 의미

 

용담산성은 적어도 고구려 이전 부여 시기 부터 중요한 시설로 이용되기 시작하여, 고구려의 중기에는 수도방어 체계의 중요거점으로 사용되었음이 명확하다. 2013년 발굴성과에서 보듯이 금대에까지 사용된 것 역시 성의 성격규명에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고구려 당시에는 인근의 동단산성과, 남성자 토성 등과 연계하여, 지역 통치와 중요 군사시설로 이용되었음은 이미 오랜 조사연구를 통해서 규명된 바 있다.
복수의 문헌에 등장하는 고구려 멸망당시 당군의 행군노선은 비교적 신뢰할 수 있는데, 이때 등장하는 부여성이 길림 용담산성이라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부여성은 현재의 유하 나통산성이며 용담산성이 부여성은 아니라는 견해 역시 있어서 이에 대한 판단은 아직 이르다.
 

자연환경

 

용담산성은 길림시의 시중심에 위치하며 산성 앞으로 시가지와 산성사이에 제2송화강이 흐르고 있다. 서남쪽으로는 동단산성이 있는 동단산이 연접해 있다.
 

유물정보

 

앞선 조사에서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2013년도 발굴시 지층에서는 대체로 금대(金代)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성벽에서는 서단산(西團山)문화 토기편이 출토되었다.
 

참고문헌

 

·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2014, 「2013年吉林省文物考古研究所考古发掘收获」『東北史地』2014-3
· 張福有, 2015, 「夫餘後期王城在遼源」『東北史地』2015-6
· 王綿厚, 2015, 「扶余城, 扶余部與扶余川再考論」『東北史地』2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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