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넷

상세검색 공유하기 모바일 메뉴 검색 공유
닫기
리스트

고구려문화유산자료

사료라이브러리 열기
ID :NAHF.ku.d_0001_0040_0030_5180IDURL
사료라이브러리 열기
  • 글씨크게
  • 글씨작게
  • 프린트
  • 텍스트
  • 오류신고

집안 국내성지(통구성)(集安 國內城址; 通溝城)

 
  • 구분유적
  • 시대고구려
  • 문서번호02-D2-01
  • 위치(출토지)집안시 시중심 전역
  • 지역집안(集安市)
  • 유형성곽〉평지성
  • 형태사항통구분지는 동서 길이 10km, 남북 너비 2-4km 다수  
 

출토지

 

집안시 시중심 전역
 

연대

 

고구려 전기간
 

조사내용

 

 
:1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2006년 · 국내성 남벽 체성 보호공정은 ‘집안 지역을 고구려 후속 보호 항목’의 하나로 정식 항목으로 설정됨.
2007년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집안시박물관(集安市博物館)· 국내성 남벽 체성 보호 공정을 위해 국내성 남벽에 대하여 고고 발굴을 진행하였으며, 남벽 중부의 성벽 외측에서 치(馬面) 3곳을 정리하였음.
2009년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집안시박물관(集安市博物館)· 국내성 남벽 체성 보호공정을 정식으로 시행하기 위해 벽체를 수리하는 과정에서 연속으로 남벽 중부, 동벽 남쪽 구간에서 치(馬面) 2곳을 발견하였고, 성 동남 모서리에서 각루 1곳을 발견하였음.
· 집안시박물관은 유적에 대하여 초보 정리를 한 후 유적 상황이 비교적 복잡한 것을 발견하고 길림성 문물국에 보고하였는데, 길림성 문물고고연구소에 위임하여 보다 진전된 정리를 진행하였음.
· 이미 발견된 유적에 대해 정리하는 과정 중에 있었기에 발굴자가 남벽 외측까지 의식해서 고구려 시기의 유적이 많이 남아있을 수 있게 되었음. 국내성 남벽 외측의 현존하는 유적 현상에 대하여 완전 정리하였으며 동시에 체성 보호 공정을 순리대로 질서 있게 진행할 수 있었음.
· 일찍이 발견된 유적에 대하여 정리를 동시에 했는데, 남벽 외측에서 남벽의 뻗어나간 방향을 조사하기 위해 너비 1m의 트렌치(探溝) 하나를 시굴하였음.
· 이미 발견된 치(馬面) 2곳 외에, 또 남벽의 서부와 동부에서 연속하여 치(馬面) 4곳을 발견, 정리하였음.
· 남벽 동부 東盛街 입구에서 문지 1곳을 정리하였으며 아울러 동벽 남쪽 구간에 대하여 길이 65m의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동벽 외측 벽면의 돌로 쌓은 구간과 국내성 성벽 동남 모서리의 내측 부분에 대하여 발굴을 진행하였으며, 또 동벽 남쪽 구간의 1개 지점에 대해서도 부분적인 절개를 진행하였음.
· 2009년도의 발굴은 모두 치(馬面) 6곳, 문지 1곳, 각루 1곳, 국내성 동벽과 남벽의 성벽의 뻗어나간 방향, 벽체의 너비, 건립이 시작되는 층위, 초축 연대, 축조방식, 벽체의 보충 수리 상황, 치와 각루의 축조 방식 등 다방면에서 고고학적인 인증을 얻었음.
· 2003년 국내성 평면 실측도의 기초 위에서 고고 실측을 통해, 국내성 남벽과 동벽 남쪽 구간 성벽의 위치와 뻗어나간 방향을 보충하였고 남벽의 길이가 759.78m 임을 측량하였음.
· 2009년도의 정리를 통해 국내성 초축 연대, 성벽의 구조, 축조 방식 등의 문제에 대하여 고고 발굴 작업으로써 완전히 움직일 수 없는 학술적인 인식을 얻었음. 2009년 정리 획득한 학술 인식을 인증하기 위해 국내성 성벽의 평면 윤곽을 완전히 하였음.
2011년 6 ~ 9월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집안시박물관(集安市博物館)· 국내성 동벽 북쪽 구간에 대하여 2010년에 현대 건축물을 철거 이전하여, 완전히 준비를 끝마친 후 해당 구역에 대한 고고발굴을 진행하였음.
· 2011년도의 정리는 북쪽의 2003년 정리한 국내성 동북 모서리 동벽 남측에서부터 시작해서, 남쪽의 團結路 북쪽까지 현재 남아있는 현대 건축물 2동의 북단까지 모두 동벽 외측 벽면의 돌로 쌓은 길이 약 85m의 구간을 정리하였음.
· 아울러 새로 발견된 치(馬面) 2곳과 벽체 2개 지점에 대하여 절개를 진행하였음.
· 발굴 정리를 통해 이 구간 동벽의 성벽 윤곽, 벽체의 건축 구조 및 초축 연대를 확인하였음.

 

구조특징

 

국내성지는 고구려 시기 장기간 수도였고, 이후에도 오래도록 도시로 지속되었다. 고구려시기에도 수차례 전란을 통하여 수축 및 개축이 이어진 것은 사료나, 고고조사를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국내성지에 대한 고고조사 발굴은 1975-1977년 성벽 등에 대해서 시행된 바가 있지만, 2000년대에 소위 동북공정을 통하여 국가적, 대규모, 장기간 조사와 복원이 이루어졌다. 특히 2009년도의 발굴을 통해 새롭게 4개의 치(馬面)를 포함하여 치 6곳, 문 터 1곳, 각루 1곳을 확인하였다. 또 국내성 동벽과 남벽의 성벽의 뻗어나간 방향, 벽체의 너비, 건립이 시작되는 층위, 초축 연대, 축조방식, 벽체의 보충 수리 상황, 치와 각루의 축조 방식 등 다방면에서 고고학적인 인증을 얻었다.
2011년에는 현대 건축물을 철거 이전하고 동벽 북쪽 구간을 조사발굴 및 복원하였다. 이 과정에서 새로 발견된 치 2곳과 벽체 2개 지점에 대해 절개를 진행하고, 성벽의 축조 방식등을 확인하였다.
치(馬面)와 각루는 그 내부 구조와 성벽과의 연결 방식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대체로 2유형으로 분류된다. 제 1 유형은 동벽 1호 치, 동벽 2호의 치(馬面)등 이다. 국내성에서 발견된 기존 치(馬面)와 같은데, 바깥 테두리(外框) 내부는 능형석(棱形石) 혹은 불규칙한 형태의 괴석으로 쌓았다. 치 내부의 충전석과 성벽 벽체 내부의 충전석이 서로 맞물려 일체가 되도록 축조하였고, 치의 바깥 테두리에 쌓은 돌과 성벽 벽면에 쌓은 돌 사이도 서로 맞물리는 형태를 띠고 있다.
제 2 유형은 동남 각루와 남벽 1호 치 등이 여기에 속한다. 바깥 테두리 내부는 강돌과 모래를 혼합해서 채웠다. 또 치와 각루는 성벽의 주체 부분과 격벽으로 분리되어 있다. 동남 각루의 절개를 통해, 각루 주체와 그 내부 벽체를 나누는 격벽이 각루의 기초 바닥까지 아래로 뻗어있음을 발견하였고, 또 격벽에 사용된 재료의 특징은 건축이 시작된 층위와 축조방식이 각루 서측의 남벽과 완전히 같으며 위치도 서로 대응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다만 각루 바깥 테두리에 쌓은 돌이 남벽 벽면을 쌓은 돌과 서로 맞물리는 형태는 없다. 동남 각루는 기존 성벽의 모퉁이 바깥을 보완하기 위해 축조한 것이므로 그 건축 연대는 안쪽 성벽보다 늦다.
 

역사적 의미

 

국내성은 고구려의 두번째 도읍지였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구려의 2대왕인 유리왕 22년(기원후 3년)에 국내 위나암으로 도읍을 옮긴 후에 20대 장수왕 15년(427년) 평양성으로 다시 옮기기 까지 400년이 넘는 시간동안 고구려의 수도였다(물론 고국원왕 시기 위치 불명의 평양동황성으로 잠시 이거한 사실이 있다). 이후로도 국내성은 전략적, 정치적 거점도시의 지위를 지녔던 것으로 파악된다.
집안시의 국내성 유적과 집안시 인근의 적석고분, 산성 등 방어시설, 광개토왕비 등은 고구려의 역사문화를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인식되어 왔다. 다만 장기간에 걸쳐 주민들이 거주하면서 유적이 파괴되거나, 조사가 어려운 경우도 허다했는데, 특히 국내성 유적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였다. 2000년대에 이르러 중국이 추진한 이른바 동북공정을 통하여 집안일대의 고구려 유적들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와 정리작업이 착수되었는데, 성곽유적 주변의 현대시설 및 주거지를 철거하면서 새로운 사실과 연구과제도 도출되기에 이르렀다.
2009년과 2011년 조사결과 국내성의 처음 건축시기에 대한 논의는 최근 가장 활발한 학술논쟁을 촉발시키기도 하였다.
즉 이전까지의 연구에서는, 국내성의 석벽의 경우 3-4세기 초 처음 쌓아진 것이고, 이보다 먼저 토축 성벽, 혹은 토성이 존재했는데, 이 토성은 고구려 이전 한(漢)에 의해서 축조된 것이라는 의견이 있었고, 이것을 부정할 명확한 근거가 없었다. 그런데 최근의 국내성 동벽과 남벽의 고고 정리의 새로운 성과에 근거해서 국내성의 초축 연대를 서기 342년으로 제시하였고, 국내성 석벽 아래에서 발견된 토축 부분은 석벽의 토축 성벽보다 연대가 이르지 않으며, 석벽 내부의 토축 벽심(墻芯)에 해당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아울러 고구려 토기에 대한 편년 연구 성과에 기초해서 토축 벽심(墻芯)내에서 출토된 토기편의 연대가 서기 4세기 초전후보다 이르지 않음을 파악하게 되었다.
 

자연환경

 

국내성지는 중국 길림성 통화시의 현급도시인 집안시의 시중심에 위치한다. 지리적으로는 압록강 중류 우안의 통구분지에 해당한다. 통구분지는 동서 길이가 10km, 남북 너비 2-4km로 넓은 평지에 속한다. 압록강 반대편에는 북한의 만포시와 마주하고 있다. 주변으로는 동쪽 6km에 용산(龍山), 북쪽 1km에 우산(禹山), 서쪽으로 통구하(通溝河)를 건너 약 1.5km거리에 칠성산(七星山)이 위치하여 있다. 국내성, 즉 현재의 집안시 중심의 동남으로 압록강이 서남방향으로 흘르고 있고, 서쪽에는 통구하가 남으로 흐르면서 국내성의 남서단에서 합류한다. 성의 남쪽에는 동에서 서쪽으로 성벽외곽을 따라 통구하로 들어가는 작은 개울이 발견되는데, 이는 국내성의 천연 해자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전체적인 지형으로 보자면 북, 서면은 높은 산이 둘러쳐 있고, 남과 동면은 압록강이 흐르는 형상이다.
 

유물정보

 

다양한 종류의 다수 유물이 출토되었으나, 정보보고가 미비하다.
 

참고문헌

 

·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集安市博物館, 2012, 「集安國內城東南城垣考古淸理收穫」『邊疆考古硏究』11
 

태그 :

태그등록
이전페이지 리스트보기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