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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문화유산자료

노호초 7호분(老虎哨 7號墳)

  • 구분
    유적
  • 시대
    고구려~고구려 후기
  • 위치
  • 유물번호
    S000058
  • 위치(출토지)
    集安市 楡林鎭 老虎哨村
  • 지역
    집안(集安市)
  • 유형
    고분>봉토석실분
  • 형태사항
    높이: 1.10m  , 석실 
출토지
집안시 유림진 노호초촌 (集安市 榆林鎮 老虎哨村)
연대
고구려 전반(3세기)~고구려 후기
조사내용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1962길림성박물관, 집안현문물보관소
(吉林省博物館, 集安縣文物保管所)
 
1981집안현문물보관소
(集安縣文物保管所)
10월 조사에 林至德, 閻毅之, 趙書勤이 참가하였고, 노호초 수력발전소 건설로 인해 발굴 조사를 실시함.
구조특징
주변 길이 30m, 殘高 1.10m이고, 방향은 南偏西 40°임. 석실은 동분이혈의 동·서 이실무덤으로, 두께 0.5m의 격벽으로 동실과 서실을 구획(동실 서벽과 서실 동벽이 같음)하고, 연도의 동실은 동쪽에 있고 서실은 서쪽에 있으며, 석실 평면은 刀形임. 석실 상부의 천정석은 이미 옮겨졌고, 연도는 동·서실 모두 동일함.
내부규모 및 특징
동실 길이 2.2m, 폭 1.1m, 높이 0.9m
서실 길이 2.2m, 폭 1m, 높이 0.95m
연도 길이 1.25m, 폭 0.8m, 높이 0.6m
역사적 의미
고구려 고분의 변천과정 상 석실봉토분은 3세기대 이미 출현하여, 4세기 중엽-5세기 중엽에 크게 발전하고, 6세기 중엽에는 고구려 고분양식의 주류를 형성하므로 봉토분이 중심이 되는 노호초고분군의 연대는 고구려 전반인 3세기부터 고구려 후기까지로 추정됨.
소형 봉토분은 피장자의 신분과 빈부의 차이와 빈부의 차이에 따라 재료 및 규모의 크기에 차이가 있었음을 보여줌.
입구 표시석(迎門石)은 고구려 후기(6세기)로 비정되는 5회분 4호묘 및 5호묘, 통구 12호분(마조총) 등의 대형 고분에서 전실 앞의 묘도 중앙에 설치되어 “擋門石”이라 칭하는데, 이러한 시설은 고구려 소형 봉토분 중에서 발견된 예는 없으나, 노호초는 소형 고분임에도 발견되는 첫 사례로 고분 구조에서 반드시 필요한 시설은 아니며, 고구려 후기 葬俗에 의해 출현한 일종의 관념을 표명한 것으로 추정됨.
자연환경
유림진 노호초촌 서쪽 200m에 위치하고 노호초 북면의 黑駝山 아래에 남북으로 펼쳐진 길고 좁다란 언덕의 중앙에 분포하며 분포 범위는 대략 3천㎡임. 노호초촌은 집안현에서 서남 50㎞ 거리에 위치하나 현재 수력발전소로 인해 완전 수몰되었고, 노호초의 동·남·서쪽 등 3면을 압록강이 둘러싸고 있으며,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渭源郡이 위치함.
참고문헌
· 吉林省文物志編纂委會, 『集安縣文物志』, 1983
· 趙書勤, 「集安縣老虎哨古墓」『文物』 1984-1, 1984
· 國家文物局 主編, 『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 文物出版社, 1992
· 李殿福(車勇杰·金仁經 譯), 『中國內의 高句麗遺蹟』, 學硏文化社,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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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호초 7호분(老虎哨 7號墳) 자료번호 : ku.d_0001_0040_0030_02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