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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소장 근대한국문서

러시아 극동정책 보고서 Ⅰ

  • 구분
    보고서
  • 문서번호
    ГАРФ,ф.543,оп.1,д.170,лл.1-19об.
  • 원소장처
    러시아연방 국립문서보관소
  • 대분류
    정치/외교(국제문제)
  • 세부분류
    국방·군사/외교정책/국제관계/동맹·조약·협정/전쟁
  • 주제어
    러시아의 극동정책
  • 색인어
    극동, 극동정책, 만주, 한국, 중국, 일본, 동아시아, 러일전쟁, 황화론, 태평양, 국경선, 병합, 몽골, 협정
  • 형태사항
    38  , 타이핑  , 러시아어 
극동에서 일어난 최근 몇 년 간의 사건들로 인해 러시아는 그곳 상황을 제국의 중대한 이익들에 완전히 부합하도록 즉각 결정을 내려야 하는 절박한 입장이 되었다.
이 결정이 올바른 결정이 될 수 있으려면, 우리의 극동정책이 지향해야 할 목표를 분명히 설정하고, 그에 따라 상황에 걸맞게 필요한 행동계획을 수립해야만 한다.
 
우리의 오랜 동아시아 정책은 모두 두말 할 나위 없이 “자연적인 국경선을 지향하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는데, 이 지역의 경우 동쪽과 남동쪽으로는 바로 태평양 연안이 그런 경계가 된다. 이 명제는 증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명백한 것이다. 이것은 말하자면 정치적 공리로, 만일 이 명제에 의구심이 생긴다면 그것은 오로지 이 자연발생적인 지향이 실현되어야 하는 때와 관련해서일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출발한다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다. 즉, 태평양 연안이라는 자연적인 국경선을 지향하는 러시아로서는 그 길목에 위치하고 있는 만주와 한국을 집어삼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러시아로서도 매우 웅대한 이 정치적 과제는 그에 따르는 복잡한 상황들 때문에 다소 먼 미래에야 완전히 해결될 수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 궁극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호기일 것이라고 생각되는 이 역사적 순간에 목표 달성에 필요한 방법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가 지금 모든 노력을 경주할 의무가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것으로 우리의 극동정책 계획안이 갖고 있는 일반적 성격이 아주 분명히 규명되며 기본적 관점도 확립된다. 바로 이 관점에 따라 지금 우리는 극동에서의 모든 행동 계획을 수립해야만 한다.
동아시아 정책 문제를 그와 같이 설정하면 당장 우리는 극동의 현실에 직간접적으로 간여하고 있는 몇몇 외국 열강의 이해관계와 곧바로 충돌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총체적으로 우리의 행동계획을 수립할 때는 반드시 러시아의 전진정책에 대한 이들 열강의 태도를 면밀히 고려해서 신중하게 계산에 넣어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 틀림없이 최대의 관심을 나타낼 것으로 보이는 나라는 한국과 중국이다. 왜냐하면 러시아의 전진정책은 바로 이 두 국가의 영토 불가침성에 위협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두 국가는, 정도가 같진 않겠지만, 사회 조직들이 해이해져 버린 데다가 군사력도 약해서 우리의 움직임에 대항할 수가 없다.
한국은 약해빠졌고 전투력도 전혀 갖추지 못한 나라로, 열강들이 서로 차지하고자 각축을 벌이는 정치 투쟁의 장으로 전락한 지 오래이며 머지않은 미래에 외국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될 운명에 처해 있다. [한국]정부는 나라의 현실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을 막을 능력이 없기에, 우리가 전진하는 문제와 관련해 그들의 역할은 완전히 무시해도 된다. 관료들 및 문명인을 자칭한 일본인들이 옥죄고 있는 억압 상황에서 벗어나길 갈망하는 한국 인민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웃 열강[러시아]에 눈길을 돌리고 있는데, 그곳으로 이주한 한국인들은 굉장한 복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황제 지배 하의 풍요로운 삶에 대한 이야기는 한국 전역에 빠르게 전파되면서 인민 사이에 회자되는 북방의 강국 이야기를 확신시켜 주고 있다. 즉 이 나라가 한국에 들어오면 평화와 안정이 정착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때문에 한국에 대한 우리의 적극적인 정책이 적대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예상은 오산일 수도 있다. 오히려 반대로 인민들은 우리의 정책에 공감할 것이며, 최악의 경우라도 그들은 오랜 세월 침체 상태에 빠져 있는 자신들 고유의 관용 어린 무관심으로 우리를 대할 것이다.
중국의 경우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최근 몇 년 사이 두 차례에 걸쳐 중국의 군사력은 형편없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은 중국에 대해 무언가 숨겨진 힘이 있다고 여기고 있다. 아마도 이것은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완전한 자주적 삶을 영위해 온 3억 5천 만의 거인을 무능력하다고 생각하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이로 인해 중국은 지금까지 여러 가지 국제문제에서 실제 가치보다 훨씬 더 진지한 고려 대상이 되고 있다. 매우 유리한 상황일지라도 중국 내에 군대 비슷한 것이 창설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진대, 중국의 군사적 대비 태세에 지나치게 큰 의미가 부여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정부에 강점이 있다면, 그것은 다만 외국 열강들 사이에 알력을 조장해서 거기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끌어내는 능력뿐이다. 지금껏 중국이 상대적으로 그리고 어쨌든 과분하게 성공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서 빠져나오고 있는 이유는 오로지 그것으로 설명할 수 있으며, 또한 열강들이 매우 경솔하게도 중국 정부가 쳐 놓은 덫에 대개 걸려드는 것도 한 원인이 된다.
이렇듯 중국 정부의 힘은 겉보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중국 정부는 보잘것없고 허약하며, 사실대로 말하면 한국 정부보다 조금 나은 정도이다.
북경 정부의 이런 상태는 만주 문제에 대한 그들의 태도에서 분명히 입증된다. 실제로 1900년 사건주 001
각주 001)
의화단의 난을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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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후 우리 군대가 만주를 점령하자 중국은 이 변경지역을 영구적으로 잃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1902년 3월 26일 조약으로 중국은, 러시아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을 염려해서든 아니면 어쨌든 그것을 원하지 않아서든 간에 중국제국의 [영토상의] 온전함을 훼손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게 되었다. 이런 기대는 우리가 묵덴성주 002
각주 002)
묵덴은 현재의 심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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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서부에서 철군을 하고 북부 철도를 중국에 넘겨준 이후 더욱 커졌고, 여기에 고무된 중국 정부는 우리에게 조약의 나머지 항목들도 이행하라고 촉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점령지의 방비를 강화하려는 몇 가지 징후들이 나타나자 이 기대는 또 다시 흔들렸고, 스스로의 무능함을 체감하던 중국 정부는 자신이 즐겨 쓰던 수법에 기대어 일본과 영국, 미국에 도움을 청했다. 이들 열강, 특히 일본은 중국에 공감을 표했지만, 그러한 공감은 중국에게 피부에 와 닿을 만한 이익을 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러시아가 만주에서 군사력을 상당히 강화하도록 자극하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자신감을 잃은 중국 정부는 열강들의 협조를 신뢰하지 않게 되었고, 일본에 대해서도 신뢰를 상당 부분 거둔 데다가 심지어는 그들의 도움에 대해 진정성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래서 만일 두 가지 상황으로 위협을 받지 않는다면 중국 정부는 또다시 만주의 상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할 것이다. 그 상황이란 첫째, 만주와 관련된 러시아와의 협정이 중국의 불가침성을 해하는 선례가 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지금도 나라 안에서 인기가 없는 왕조가 만주까지 양보함으로써 완전히 “체면을 상실하고” 그나마 남아 있는 흔들리는 권위마저 잃게 되는 것이다.
이런 근거에서 만주 문제를 해결할 때 우리는 중국 정부 측의 심각한 저항에 부딪히지는 않을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3의 열강이 만주를 놓고 무력 충돌을 일으킬 경우 중국을 전쟁에 끌어들여 우리에 대항하도록 만들려는 치열한 시도들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중국이 우리의 적들 편에 설 수도 있으므로 이에 대비를 해야 하지만, 중국의 적극적인 관여에 대해 실제 이상의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이제 우리에 대한 중국 인민들의 태도에 주목하면서 언급해 둘 점이 있다. 중국 인민 중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질 만한 대상은 만주의 주민들과, 만주 점령이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는 몽골 접경지역의 주민들뿐이라는 사실이다. 최근 몇 년 간의 경험으로 보면, 중국인들은 정치적 원칙이 전무한 데다 물질적 이익을 숭배하기 때문에 이미 러시아인들과 일을 하고 있는 일부 주민은 만주에 러시아인들이 거류하는 것에 대해 호의적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홍호자(хунхуз, 紅鬍子)주 003
각주 003)
청나라 말부터 중국 만주 지방에 있었던 마적으로, ‘붉은 수염’이라는 뜻을 가진 악명 높은 기마 무장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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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알려진, 집과 재산이 없는 사람들 상당수가 변경 지역에서 러시아인과 선량한 중국인 모두를 상대로 계속 소란을 일으키는 것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이 소란들은 중국 관헌이나 심지어 중앙 정부가 주도를 할 경우 더욱 심각해질 텐데, 중앙 정부는 홍호자 도당에게 무기를 공급하는 것은 물론이고 변장한 정규군을 투입시켜 서둘러 도당을 강화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온순한 주민들이 우리의 보호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가질 때까지 그리고 [중국] 당국 안의 반(反)러시아적 요소들이 제거될 때까지 특히 초기에는 변경 지역을 평화롭게 하기 위해 일정 정도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생각된다.
몽골 주민에 대해 말하자면, 이들이 우리에게 적대감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은 다음의 경우들뿐이다. 즉, 우리가 몽골인들에게 분명히 내재해 있는 러시아에 대한 일체감을 증진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주로 이주로 인해 몽골에 중국인들의 농간이 확산되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든 돕게 되는 경우이다.
그러므로 이상의 설명에 근거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한국과 중국은 우리의 전진정책으로 영토의 불가침성을 위협 받게 될 테지만 그들 스스로는 우리에게 완강하게 저항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의 전진에 말하자면 간접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다른 열강들의 입장을 살펴보려면 제일 먼저 일본을 거론해야 한다. 태평양으로 진출하면서 우리가 영향력을 확대해가는 나라들에서 마침 일본은 자국의 중대한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를 침해당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대륙 침투 열망이 시작된 것은 아주 먼 과거 역사의 일이다. 영웅적 행군에 대한 전설적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난 ‘새로운 일본’은 자신들의 유럽식 문명화가 종결되었다고 평가하고서 아시아 대륙에 발판을 구축하기 위해 서둘러 초반의 좋은 기회를 이용했다. 이러한 시도는 이미 잘 알려진 이유들 때문에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모욕을 느낀 일본은 특히 러시아를 향한 분노를 가슴 속에 품어 두었다. 일본이 생각하기에 러시아는 1895년의 외교적 패배를 안겨준 장본인으로, 그 패배의 후유증은 당시 일본의 손을 떠난 요동을 우리가 점령하면서 더욱 깊어졌기 때문이다.
일본이 느낀 모욕감은 중국과의 전쟁 이후 군대를 재조직하고 강력한 전투 함대를 창설하려는 광적인 사업을 시작한 하나의 주요 원인이었다. 새로운 사단 편성 및 새로운 군함들의 출현과 나란히 일본에서는 국력에 대한 확신과 자국이 극동에서 수행하도록 사명을 부여받은 위대한 역할에 대한 확신이 인위적으로 일깨워져 자라났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울리던 “아시아인을 위한 아시아”라는 문구를 점점 더 큰 소리로 되풀이하기 시작하면서 범아시아주의 이념을 조금씩 앞에 내세우고 있는데, 이 이념의 지도자는 당연히 일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명료하게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자국민들의 머릿속에 떠돌고 있는 이러한 광범위한 정책 계획안에 접근하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당연히 극동에서 러시아의 위세가 조금이라도 확대되는 것에 무관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아직은 러시아를 바이칼 뒤편으로 몰아내는 것은 꿈도 꿀 수 없겠지만, 일본은 러시아가 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멈추게 하기 위해 모든 힘을 쏟기로 이미 결정했다. 만주 문제가 처음 불거졌을 때도 일본은 바로 이런 열정을 가지고 앞에 나섰던 것이다. 일본은 만주에 발판을 구축하려는 러시아의 결정을 한국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였다. 일본은 자국의 정책 계획안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한국을 첫 단계로 삼을 게 틀림없으며, 게다가 한국에 대해서 자신들은 논쟁의 여지가 없고 신성하기까지 한 역사적, 경제적, 정치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만심과 첫 승리에 대한 기대로 이성을 잃은 일본인들은 세계 최고의 강국[러시아]이 가진 불가항력적인 힘을 망각한 채 유례 없는 단결심으로 이 열강에 대해 전쟁을 선포할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일본으로서는 다행스럽게도, 노련한 위정자들이 조종하고 있는 이 제국 정부는 인민들의 격한 감정에 휘말리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육군과 해군에 만반의 전투 태세를 갖추게 함으로써 국민의 열망에 부응한 후 러시아와의 협상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 협상들에서 일본 정부는 이미 과거와 같은 분별력을 보이지 못했으며, 분명 러시아의 평화애호 정신을 기대한 듯 그리고 아마도 전에 우리가 양보를 한 것에 잘못 길들여진 듯 러시아로서는 받아들이기 불가능한 그런 요구들을 제시하였다. 협상이 지연되고 있음을 깨달은 데다가 더 이상 인민들의 격정을 제지하는 게 어려울 것을 우려한 일본 정부는 한국에 군대를 상륙시킬 준비를 시작했고, 이와 함께 우리가 만주에서 차지하고 있는 것과 유사한 입지를 [한]반도에 조성하기 위한 조치에 들어갔다. 위기 연장을 위해 해산되어 있던 의회의 동의도 기다리지 않은 채 [일본] 정부는 서둘러 서울-부산 간 철도를 완공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할당하였는데, 더불어 이 철도는 반관반민(半官半民)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바로 그때 이 철도 구역에서 동학도의 봉기가 시작되었다. 여기에는 군대가 보호를 위해 철도 통과지역을 장악하도록 자국 정부에 구실거리를 제공하고자 애쓰는 일본 밀정들의 관여가 없잖아 있었던 게 틀림없다.
작금의 상황은 그와 같다. 러시아와의 전쟁은 몹시 위험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일본 정부가 만주 문제 때문에 전쟁을 결심했다고 가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우리와 일본의 협상이 일본에 만족할 만한 결과로 귀결되지 않는다면, 일본은 반도에서 자국의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한국을, 최소한 그 남부라도 지체 없이 점령할 것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일본 정부가 신중하다고 할지라도 이런 조치를 거부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첫째, 이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자신의 권리라고 믿기 때문이며, 둘째, 이렇게 해서 국민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않으면 자신은 권력을 유지할 수 없을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술한 바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즉, 만주 문제를 해결하는 부분에서는 일본이 적극적으로 맞대응할 리가 없다고 보아야 하지만, 반대로 한국에서는 우리가 일본의 매우 치열한 저항에 부딪힐 준비를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그런 결단력은 그들의 지나친 자신감 외에도, 상당 부분 동맹국인 영국의 지지 및 영국과 이어서 일본에도 우호적인 미국의 지지를 고려한 결과로 설명될 수 있음을 지적해 두어야겠다.
실제로 이 두 열강은 만주 문제가 불거진 바로 그때부터 러시아의 경쟁자로 나서면서, 우리에 반대하는 세력을 만들도록 적극적 역할을 맡겼던 일본에 정신적인 지지를 보냈던 것이다. 사실 영국은 만주에서도(영구(營口)는 예외) 한국에서도 특별한 이해관계가 전혀 없다. 영국이 러시아에 대항하는 이유는 이런 것이다. 한편으로는 아시아에서 러시아의 성공을 방해한다는 자국의 전통적인 정책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갈등을 부추김으로써 양국을 약화시키고 극동에서 쇠약해져 버린 자국의 위신을 회복하려는 바람 때문이다. 따라서 영국은 일본과의 동맹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는 일본에 정신적 지원과 어쩌면 금전적 지원도 하지 않을 것이고, 더군다나 그것이 충돌을 부를 정도라면 더욱 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영국으로서는 일본이 극동에서 승리를 거두는 것, 즉 자국의 주된 무역 경쟁국이 극동에서 강해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도와 중앙아시아에서의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서라도 영국은 동아시아에서 어떤 특정한 군사적 행보를 자제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역시도 만주와 한국에서는 단지 무역상의 이해관계만 있으며, 그것을 유지하는 문제만 고심할 뿐이다. 최근 미국에서 일고 있는 제국주의적 야욕에 대한 온갖 소문과 미래에는 무역에서 태평양을 종속시키겠다는 거창한 계획은 가뿐히 공상으로 치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무역상의 이해관계는 그것 때문에 미국이 러시아와의 관계 단절을 결심할 정도로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다. 비록 최근에 와서 둘 사이에 예전의 우호적 관계가 어느 정도 손상되기는 했어도 말이다. 이미 언급했듯 미국이 현재 일본에 정신적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은 동맹국인 영국과 보조를 맞추려는 바람에서 비롯된 것으로, 미국은 지금 영국과 대단히 좋은 관계를 확립해 놓고 있다. 미국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일본에] 정신적인 지지를 보내고 추가적으로 재정적 지원을 결정할 가능성은 극히 적다. 왜냐하면 양키들은 실용주의적이라서 일본과 러시아 간의 문제가 특히 러시아에 이롭게 잘 마무리된다면 바로 이 극동이 미국 자본에 훨씬 더 유리한 투자처가 될 것이라는 점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벌써 미국에서는 그런 의미를 담은 신중한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로써 충분한 확신을 갖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즉 영국과 미국은 현재 일본을 지지하고 있으나, 만주와 한국 문제를 두고 러시아와 단절까지 하지는 않을 뿐만 아니라 얼마간이라도 자금을 통한 실질적인 원조 제공조차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다른 열강들 가운데 독일은 의심할 바 없이 러시아와의 좋은 관계를 매우 중요시하고 있어서, 이해관계가 거의 없는 만주나 한국 때문에 그 관계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은 당연히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독일은 우리가 중국 내 독일의 세력권에 간섭하지 않는 한, 우리의 극동 정책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산동에서 자신의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선례를 챙기게 될 것이다. 그밖에도 독일은 그 누구보다 더 ‘황화론’(黃禍論)주 004
각주 004)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일어난 ‘황인종 경계론’(yellow peril)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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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의미를 의식하고 있는 듯 보이기 때문에 우리의 정책에 한층 공감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만주와 한국 문제에서 프랑스의 역할은 전적으로 러시아의 동맹국이라는 입장에 따라 결정된다. 그런데 프랑스는 극동에서 우리가 펴고 있는 적극적인 정책에 대해 그다지 공감하지 않는다는 견해가 있다. 적극적인 극동 정책으로 인해 서구에서 우리 힘이 약해진다는 게 그 이유인데, 프랑스인들은 이 부분에 몹시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러므로 최악의 경우에도 우리는 독일과 프랑스 측으로부터 우호적인 중립을 기대할 수 있으며, 더 실질적인 지원을 기대하는 것도 매우 가능하다.
독일과 프랑스가 실질적 지원에 나선다면 그것은 대륙 열강들의 동맹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인데, 왜냐하면 이 동맹은 위에 거론된 국가들을 식민지화하여 발전시키고 있는 영국의 해군력에 대항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만주와 한국 문제를 통해 표출된 러시아의 극동 전진 정책에 대해 외국 열강들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대략 그와 같다.
이상에서 볼 때 본질적으로 극동에서 우리의 유일한 적수는 일본임이 분명하다. 그것은 일본과 우리의 이해관계가 대립하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또한 극동에서는 일본만이 주목할 만한 육해군 병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동아시아에서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대상은 오로지 일본뿐이며, 만주와 한국 문제가 해결되면 일본과 우리의 관계 문제도 근본적으로 해결된다는 것이다.
과거에 우리와 일본은 특히 한국을 두고 외교적으로 경쟁을 하던 관계였는데, 최근 몇 년 간의 상황들로 인해 이제 이 경쟁 관계는 국제 분쟁의 성격을 띠게 되었고 그것은 최근 몇 개월 사이에 대단히 첨예해졌다. 이 러일 분쟁의 종착점은 협정 아니면 전쟁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두 가지 길 가운데 협정이 전쟁보다 얼마나 더 바람직한지는 전혀 증명할 필요가 없다. 전쟁이라는 방법을 취할 수 있는 것은 다음의 경우뿐이다. 즉, 협정이라는 방법이 현재 주어진 문제에서 모든 중요한 이익들을 보장할 것이며 동시에 나라의 위엄과 위신을 보존하는 명예로운 것이 될 것이라는 조건이 당연히 있고, 그 조건 하에 협정을 통해 제시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온갖 수단이 다 동원되고 났을 때이다.
만주 및 한국을 병합함으로써 자연적인 국경선을 획득한다는 극동 정책의 최종 목표를 달성하고자 매진하는 데 있어 러시아는 일본의 이해관계와 첨예하게 충돌하고 있다. 왜냐하면 일본은 한국에 대한 자신의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권리를 전혀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관해 일본과 협정을 맺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한국에 대한 일본의 권리 주장이 근거가 없다는 점을 일본에게 입증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완전히 헛수고이다. 왜냐하면 첫째, 일본인들의 머리와 마음 속에는 자신들이 정당하다는 의식이 맹목적으로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고, 둘째, 그들의 권리 주장을 뒤엎으려면 많은 억지를 부려야 할 정도로 일본인들의 근거 중 일부는 정당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에 대한 권리 주장에 있어 일본은 이미 너무 멀리 앞서 있어서, 이 문제에서 그들이 어떤 중대한 양보를 하더라도 그것은 일본인들의 병적인 자부심에 심각한 상처를 주게 될 뿐만 아니라, 그들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제국의 위신도 떨어뜨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으로 볼 때, 일본은 어떤 경우에도 자발적으로 한국을 우리에게 주려 하지는 않을 것임을 인정해야만 한다. 아무리 약속을 해도 일본은 한국에서의 우리의 군사행동에 무관심하지 않을 것이며, 아무리 설득을 해도 우리의 한국 정책에 대한 방해를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이 한국에서 우리에게 자리를 내주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명백히 압도적인 힘의 등장일 것이다. 이런 힘 앞에서라면 일본인들은 완전히 실성하지 않는 한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음을 깨닫고, 이 싸움이 정치적 자살행위와 다름없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몸을 굽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을 떠나더라도 일본인들은 우리가 반도에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 것을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계속 훼방을 놓을 것이며, 동시에 러시아로부터 당한 무혈 패배에 대해 복수할 기회를 엿보면서 육해군 병력을 증강시키기 위해 전력투구할 것이다.
아마도 이를 위한 적절한 기회는 일본이 몰락할 때까지는 생기지 않을 것이기에 우리는 우리가 점한 입지를 유지하기 위해 극동에 강력한 육군과 상당한 해군을 주둔시켜야만 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서구에서 아주 비싼 값을 치르고 있는 그런 “무장평화”(武裝平和)가 동아시아에 정착할 것이다. 이런 평화는 매우 오랫동안 지속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특히 몇몇 열강이 그런 상태가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해 일본에 금전적인 지원을 제공할 경우 일본이 금방 몰락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극동에서 육군과 해군을 유지하는 데 매년 수천만을 소비할 것이고, 그러는 사이 그곳에는 예전처럼 매우 해롭고 무서우며 민간기업 발전에 파멸적이기까지 한 전쟁이라는 유령이 떠돌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민간기업이 없다면 우리가 극동에 머무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는 데다가 예산에 버거운 짐만 될 뿐이며, 또 아무 필요도 없는 변경 지역 때문에 중심부의 이익을 희생시킨다는 정당한 비난을 초래할 것이다.
그러므로 상술한 바를 토대로 할 때 불가피하게도 우리는 일본과의 협정을 통해 극동 정책의 최종 목표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따라서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두 번째 방법인 전쟁만이 남게 된다.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문제 해결 방식이 근시안적 관점에서는 당연히 러시아의 진정한 평화애호 정신과 전통적인 정책에 부합하지 않는 패러독스로 보여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동아시아 정책이 가진 최종 목표를 잊지 않는다면 이런 해결 방식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또한 이 전쟁은 범아시아주의의 야욕을 철저하게 억누를 수 있는 유일하게 확실한 수단인데, 이 야욕을 추동하여 미래의 선도자가 될 이가 바로 일본이다. 지정학적 조건들 때문에 운명적으로 동방주 005
각주 005)
러시아 입장에서 동방(Восток)은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지역 및 극동(極東, Дальний Восток)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먼 동쪽이라는 의미의 극동과 대비시켜 중앙아시아 지역은 가까운 동쪽이라 하여 근동(近東, Ближний Восток)이라 부른다. 이는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를 기준점으로 두고 생각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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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汗國)들의 침입으로부터 유럽을 보호해야 하는 무거운 역할을 떠맡았던 러시아로서는 이를 도외시할 수도 없고, 다가오고 있는 ‘황화론’에 대항하여 최전선에 나서서 역사의 제단에 다시 한 번 희생하는 것을 거부해서도 안 될 것이다.
이상의 내용이 모두 옳다고 인정한다면 우리와 일본의 전쟁 문제는 확신을 갖고 원칙적으로 해결해야만 한다. 그토록 중대한 결정을 내릴 경우에는 당연히 매우 신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반드시 유리한 정국이 조성되었을 때, 즉 가능한 한 최소의 노력과 희생으로 최대의 완전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을 때 그 결정을 실행하기 위해서이다. 극동에서 러시아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 한 번만 전쟁을 치를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전쟁의 결과물을 통해 극동에서 전면적으로 영원히 입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 방침은 다음과 같은 주요 조건들이 존재할 때 실현될 수 있다.
1.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기에 충분하고 그에 걸맞게 준비가 된 육해군 병력이 극동에 집결할 것.
2. 가능한 한 일본을 고립시키고, 군사행동뿐만 아니라 그것을 종결시킬 평화 협상에 대해 외국 열강의 간섭을 배제하기 위한 정세가 조성될 것.
3. 군사행동을 벌일 만한 대상이 존재할 것. 그 대상을 괴멸시켰을 때 우리가 만족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조건들 중 앞의 두 가지는 그 자체로 완전히 명백하지만, 세 번째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명이 필요하다.
문제는 도서국이라는 일본의 현재 조건을 감안할 때 그들은 우리 측의 진지한 군사행동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본질적으로 말해 일본은 섬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공격을 하기가 어렵다고 얘기하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일본의 해안을 봉쇄할 수 있고, 포격을 하거나 심지어는 연안의 여러 지점들을 점령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리 대단치 않은 병력으로 상륙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이유는 그런 종류의 작전을 수행하기에는 우리의 준비상태가 불충분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특히 지역적 조건과 [일본]주민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이 산악국은 거대한 공간을 논이 뒤덮고 있는 데다가, 드문 경우를 제외하면 오로지 짐을 실어 나르기에만 적합한 도로, 더 정확하게는 오솔길이 많아 완강하게 방어를 하기에 최적의 여건이다. 우리가 일본에 상륙하게 되면, 뜨거운 애국심과 조국 방어를 위해 희생한다는 의무감을 지닌 주민 전체를 여자나 어린아이도 예외 없이 적으로 만들게 됨으로써 그들의 완강한 방어는 심해질 것이다. 일본에 상륙할 경우 우리는 그곳에서 치열한 게릴라전에 맞닥뜨릴 수도 있고, 기지와의 해상 교통을 확보하지 못해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였던 “1812년의 위대한 군대”주 006
각주 006)
1812년 러시아를 침공했던 나폴레옹 군대를 말함. 나폴레옹 군대는 러시아 군과 민간인들의 기습적인 게릴라 공격으로 많은 타격을 입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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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처지가 될 가능성도 매우 크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만반의 전투 태세와 유리한 정세를 가정하더라도 우리는 일본 스스로가 우리의 공격 범위에 들어오기 전까지, 즉 그들의 패배가 확정적이어서 화평을 청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그런 병력을 가지고 아시아 대륙으로 건너오기 전까지는 일본과 전쟁을 시작할 수 없다.
 
이상의 내용을 요약해 보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기본 명제에 도달하게 된다.
1. 러시아 극동 정책의 최종 목표는 태평양 연안이라는 자연적인 국경선을 성사시키는 것이다.
2.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러시아는 만주와 한국을 병합해야 한다.
3. 이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유일하게 심각한 적은 일본이라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4. 이 적을 제거하기 위해 우리가 생각한 유일하게 확실한 수단은 전쟁이다.
5. 지금은 이 결정적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혀 적절하지도 않다.
 
이 기본 명제들 중 마지막 명제를 보면 군사행동 계획을 상세히 검토하는 일은 시기상조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군사행동은 앞에서 세운 목표의 직접 달성을 가능케 하지만, 그것은 다소 먼 미래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주 개략적일 망정 임박한 우리의 군사행동 계획을 천명하는 것은 무조건 필요하다. 이는 우리의 극동 정책에 내재해 있는 모호한 부분을 떨어내기 위함이며, 또 정해진 최종 목표에 맞게 우리가 가능한 수준에서 현재의 결정들을 제시하기 위함이다. 이것이 더더욱 필요한 이유는, 극동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우리의 바람과는 전혀 달리 전쟁을 재촉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우리의 전반적인 동아시아 정책 방향에서 볼 때 지금은 우리에게 완전히 부적절한 시기라는 생각이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조속히 결정을 내려야 하며, 이와 동시에 극동에서 우리의 당면 과제는 지금은 전쟁을 피하는 것이라는 점도 아주 분명해진다.
현재 이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이미 러시아와 일본 사이의 관계가 첨예해진 터라 매우 어렵다. 이들 관계가 틀어진 것은 미카도주 007
각주 007)
일본어로 미카도(Mikado)는 ‘帝(御門)’로 속세의 최고 통치자, 즉 천황을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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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특히 일본 여론이 양국 관계를 흥분시킨 데 일부 원인이 있고, 우리 자신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 일본과의 갈등은 이쪽이든 저쪽이든 한쪽이 다소 중차대한 양보를 하지 않는 한 순조롭게 마무리될 수 없는 그런 단계에 와 있다.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진행되었거나 진행되고 있는 협상의 결과들을 볼 때, 우리가 일본에 요구하는 양보를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자국의 의회 체제로 인해 국내 정당들과 언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데다가 중국의 공감하에 영국과 미국이 지지를 보내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양보를 하지 않고 있으며, 분명 러시아에 해가 될 결정을 숙명적으로 내릴 것이다.
일본 정부가 러시아에 전쟁을 선포하기로 결정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일본 정부는 자국 병력에 대한 전적인 믿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런 행보가 갖는 극도의 위험을 이해하고 있으며, 게다가 그런 행보가 방어적 성격을 띤 영일동맹의 의미를 퇴색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한국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질 목적으로 많든 적든 병력을 상륙시키기로 결정할 것이라는 점은 거의 확실하다.
우리의 극동 정책의 최종 목표라는 폭넓은 관점에서 보면 일본의 이런 행보는 나쁘지 않을 수도 있으며, 뿐만 아니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우리 계획의 기본 구상에 완전히 부합할 수도 있다. 그런 행보가 일본 병력이 아시아 대륙으로 이동하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우리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에서 볼 때 그런 행보는 전해 해롭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실 적극적인 정책을 통해 우리가 한국에서 이룬 일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우리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에 간섭할 의사가 없다고 여러 차례에 걸쳐 표명하였다. 한국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이해관계란 두세 개의 작은 개인적 이권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이론적인 것으로, 이것은 분명한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앞으로 좀 더 실제적인 이익을 발전시키기 위한 기반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본능적 예감에서 생겨난 것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무엇을 양보하든 만주에서의 우리의 입지에 명백한 위협이 되지 않고 민간인들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패권에 위험을 초래하지 않을 수 있다면 한국에서 모든 것을 완전히 양보할 수도 있다. 우리는 한국의 불가침성에 대한 의견을 수차례에 걸쳐 확인해 주었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재와 같이 일본과의 관계가 긴장된 상태에서는 우리가 한국에 일본인이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는 식으로 양보를 할 경우 틀림없이 우리는 나약하며 사태를 충돌로까지 끌고 갈 단호함이 없는 것으로 해석될 것이다. 일본이 여러 형태로 한국을 점령하는 것에 우리가 동의하면 당연히 무력 위협으로 인한 외교적 패배로 부풀려질 것이고, 의심할 바 없이 이것은 우리 위신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게다가 이웃나라라는 것 말고는 우리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이 나라에서 외국이 지배를 공고히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까지 우리가 승인한다는 것도 당연히 국제적으로 몰상식한 행위인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위에 언급한 애로사항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임박한 전쟁 가능성을 제거하고 만주에서 행동의 자유를 얻는다는 크나큰 이익을 위해 한국에 대해 일본과 타협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협상들에서 일본이 우리에게 제시한 요구들을 보면, 일본은 한국에서의 우리의 양보에 만족하지 않고 훨씬 더 나아가 만주에서도 양보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 러시아는 만주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렀기 때문에 우리가 그곳에서의 양보 하나하나에 몹시 민감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만주 문제에 있어 우리는 이미 아주 멀리 나아갔기 때문에, 정말 사소한 후퇴라도 어쩌면 회복하기 어려울 만큼 심각하게 러시아의 위신을 훼손시킬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한 의식은 진정한 러시아인 모두의 머리와 가슴에 이미 깊이 스며들어가 있다. 그리고 얼마 전 만주에서의 철군 가능성을 허용했던 사람들도 지금은 러시아가 그곳에서 후퇴하는 것은 안 된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일본의 한국 상륙 결정이 실행되는 것을 임의의 협정을 통해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우리의 거의 마지막 희망은 사라지게 된다. 이것을 기정사실로 인정해 앞으로 우리의 군사행동에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일본인들의 한국 상륙에 대해 러시아는 다음 결정들 중 하나로 대응할 수 있다.
1. 상륙한 일본 부대를 자국으로 귀환시킬 것을 요구하고, 이 요구가 이행되지 않을 경우 일본에 전쟁을 선포한다.
2. 러시아 군대는 한국 국경 및 가능하면 한국 안에서 즉각 몇몇 지점을 점령한다. 이 지점들을 고수하는 것은 만주에서 우리의 이익과 입지를 보전하는 데 필수적인 일이 될 것이다.
3. 자주 국가의 영토에 대해 일본이 저지른 폭력을 항의한다.
4. 일본의 한국 상륙에 대해 완전한 침묵으로 대응한다.
 
이 결정들 중 첫 번째는 우리 정책의 기본 과제와 명백히 모순된다. 왜냐하면 한국에 상륙한 부대를 귀환시키라고 일본에 요구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말한다면 일본에 전쟁을 선포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이 전쟁은 아직까지는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마도 이 결정은 일본의 군사행동이 만주에서의 우리의 입지를 명백히 위협하거나 또는 러시아의 위신을 모욕하게 될 경우에만 취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두 번째 결정에 따라 우리 군대를 한국의 국경 또는 한국 내부로 이동시키면 우리에게는 자연스럽게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될 것이다. 전쟁은 당장 일어나지는 않더라도 최초의 작은 우연한 사건으로도 일어날 수 있으며, 우연한 사건은 적대적인 양측 군대가 그렇게 가까이 배치된 상황에서 충분히 생길 수 있이다. 그러므로 이 결정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적합하다. 즉, 국가 전반의 차원에서 내린 판단에 따라 우리가 상대적으로 가까운 미래에 일본과 전쟁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경우, 그리고 현지 병력과 그 기지의 증강뿐만 아니라 전투에 참가하도록 예정된 군대의 전반적 집결이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두 번째 결정은 우리가 전투 준비를 할 시간을 더 많이 준다는 점에서 첫 번째 결정보다 유리하다. 동시에 이 결정으로 일본은 우리가 결정적인 타격을 가할 필요가 있는 상당한 병력을 한국으로 이동시킬 수 있게 된다.
세 번째와 네 번째 결정은 외형상으로만 다를 뿐이지 본질적으로는 서로 완전히 유사하다. 하나는 항의를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항의를 하지 않는 것이지만, 두 가지 경우 모두 우리는 일본이 전혀 부름을 받지 않고 자주 국가의 영토를 짓밟은 행위에 대해 그 순간 일시적으로 타협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결정은 우리가 평화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아무리 공을 들여 설명하려 해도 적들의 노력으로 그 결정은 무혈패배로 뒤바뀔 것이며, 따라서 러시아의 위신을 어느 정도 훼손시킬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때, 그 결정이 일본과의 협상 중단 전에 내려진다면 위신은 더욱 손상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면 이 결정은 우리에게 의심할 바 없는 매우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실제로 일본은 한국으로 들어가고 나서는 이웃 국가의 자주성에 대해 폭압을 행사하기 시작할 것이고, 그 결과 이러한 행보의 모든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비록 한국의 일부만 점령하더라도 그것 자체로 일본은 만주 때문에 우리를 귀찮게 따라다니면서 성가시게 하지는 않을 것이며 장차 우리에게 완전한 자유를 줄 것이다. 자신들의 행보가 러시아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불만을 야기했음을 의식한 일본은 이미 차지한 입지를 유지하기 위해 서둘러 한반도로 자국 병력을 이동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점령을 위해 자금을 지출하면서 우리가 공격할 만한 시설물을 한국에 신속히 만들 것이다.
이렇게 해서 세 번째와 네 번째 결정이 처음 두 개보다는 현재 우리가 추구하는 과제에 더 부합한다. 이 결정들의 상대적인 장점들에 대해 언급해 보자. 세 번째가 네 번째보다 더 선호되고 있는데, 왜냐하면 형식 면에서 더 명확하면서 러시아가 취한 결정을 공개적으로 충분히 설명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의견은 현재 러시아와 국외에 조성된 불안한 분위기 속에서 각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불안한 분위기는 주로 극동에서의 우리의 정치적 입지가 모호한 데서 초래된 것으로 사태의 자연스런 진행을 방해하고 있는데, 이런 분위기는 아마도 러시아가 소리 높여 확실하게 발언할 때만 해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토대로 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즉, 일본군 부대가 한국에 상륙할 경우 우리는 한국 국경 및 가능하면 한국 안으로 우리 군대를 전진시키든지 아니면 일본이 한국 영토에 대해 저지른 폭압에 항의하는 것으로 그치든지 해야만 한다. 이 결정들 중 어느 것을 택할 것이냐 하는 것은 각각 귀착점이 다르기 때문에 국가 전반의 차원에서 내린 판단에 따라야만 한다.
위에 언급한 결정들 중 하나를 가지고 일본과의 무력 충돌이 갖는 직접적인 위험을 제거하려면 우리는 다른 당면 과제들에 주목해야 한다. 그 과제들을 올바로 해결하면 우리는 틀림없이 위에서 적절하게 지적한 최종 정책 목표에 도달할 준비를 갖추게 될 것이다.
그 과제들은 분명 다음과 같다.
1. 우리가 일본의 한국 상륙을 허용한 이상, 만주 문제를 제대로 풀기 위해 그 결과물을 이용할 것.
2. 일본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우리의 육해상 병력을 준비시킬 것.
3. 일본을 현재의 동맹국과 우방으로부터 고립시키기 위해 우리에게 유리한 정세를 조성할 것.
 
 
이 과제들 중 첫 번째 과제의 검토에 들어가면서 기억해 둘 것이 있다. 일본의 한국 상륙으로 러시아는 장차 자유로워지면서, 만주와 관련해 우리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결정을 자유로이 내릴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이 결정의 핵심은 이제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즉 만주는 계속 러시아가 소유하고 있어야 하며 다만 문제는 그 방식을 병합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점령 유지로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 중 첫 번째 결정은 확실히 가장 단순하고도 급진적이다. 왜냐하면 이 결정은 만주를 러시아 제국의 일부로 만들어 현재 만주에 지워진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우선, 만주를 러시아에 병합시킨다는 사실은 중국 정부와 우리의 관계를 확실히 정립시키고, 이 문제에 관한 앞으로의 협상 및 오해의 가능성도 모두 없애 준다. 사실, 러시아가 내린 결정은 북경에서 찬동을 얻지 못하겠지만(중국의 나머지 지역에서는 이것을 전혀 모르는 채 지나갈 것이다), 그 결정에 필요한 토대가 아주 잘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특별한 저항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중국 정부는 적대감을 드러내겠지만 자국의 무능력으로 인해 그 적대감을 더 적극적으로 표출할 수는 없으므로 무시해도 된다는 말이다. 중국의 진상을 알고 우리를 값비싼 오류에 빠지게 했던 상상 속의 우정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것이 어쩌면 우리에게는 유익하기까지 할 것이다.
또한, 만주를 병합하게 되면 만주와 관련해 중국과 외국 열강들을 이어주고 있던 모든 조약상의 의무사항들도 자연스럽게 폐기된다. 조약상의 권리에 기댈 가능성이 사라진 데다 자신들의 주동자인 일본을 잃고 나면 이 열강들은 다루기가 더 쉬워질 것이다. 특히, 우리 측에서 그들의 무역상의 이익에 호응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다면, 그들은 만주에 대해 특별히 힘을 쏟은 적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정치적인 이해관계는 잊어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만주 병합은 이 지역으로부터 수입이 창출된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가장 단순하고도 신속한 해결방법이 된다. 마련되어 있는 조세 및 공물 제도를 약간 개선해 특히 악용의 소지를 제거하면 우리는 만주의 자원을 폭넓게 이용하는 데 필요한 이런저런 경제 계획을 그다지 서둘러 들고 나오지 않아도 된다. 기존의 조세 및 공물제도로는 당연히 우리의 모든 비용, 특히 극동의 육해군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조세 제도를 통한 모든 비용의 감당을 기대하는 것은 심지어 이치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 병력이 만주에 주둔하는 것은 만주를 장악하기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러시아의 입지를 공고화한다는 범국가적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만주 병합이 유익하지 않다는 논거로 제기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준비가 부족하다는 견해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관적인 견해는 의심할 것도 없이 과장된 것이다. 초기에는 당연히 지역 행정에 대한 어떤 대대적인 변혁을 논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새로운 통치에 소용되는 인원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만주 병합을 반대하는 실제로 매우 중대한 논거가 하나 존재하는데, 즉 그렇게 하면 다른 열강들에게 선례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이 열강들은 절대로 만주에 대한 우리의 잘 알려진 남다른 권리를 부정조차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들의 조약상의 권리가 침해된 데 대해 중국에 보상을 요구하거나, 또는 단지 자신들의 특별한 세력권에 들어올 것으로 다소 분명하게 윤곽이 잡힌 지역들에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 적절한 기회를 이용하고 싶어 할 것이다. 이것은 중국의 몰락에 대한 신호가 될 수 있다. 모든 국사(國事)가 오직 섭정 황후주 008
각주 008)
서태후(西太后)를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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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지혜와 열정만으로 영위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그녀가 사망할 경우 분명 몰락의 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중화제국의 몰락은 극동에서 아직 필적할 만한 것이 없었을 정도의 혼란 상황을 초래할 것이고 그러면 ‘중국’ 문제도 제기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중국 문제가 어떤 식으로 해결될지 예측조차 하기 어렵다. 의심할 바 없는 한 가지 유일한 사실은, 자국의 이익을 좇고 있는 열강들은 부득이 이 문제의 해결에 매우 열성적으로 참여할 것이라는 점이다. 반면 러시아는 현재의 군사 및 정치 상황에서 이웃 지역들, 특히 몽골과 중국령 투르케스탄주 009
각주 009)
중국령 투르케스탄이란 현재의 신장위구르 자치구를 말한다. 투르케스탄은 역사적으로 크게 두 지역으로 나뉘는데, 신장위구르 자치구인 동투르케스탄과, 우즈베키스탄 · 투르크메니스탄 · 키르기즈스탄 · 카자흐스탄 등을 아우루는 서투르케스탄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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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관련해 아직은 ‘중국’ 문제의 해결을 적절하게 활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이제 우리가 만주를 장악하기 위한, 즉 계속해서 만주를 점령하기 위한 다른 가능한 해결 방안을 검토하려는 마당에서, 다른 방안은 모든 점에서 훨씬 더 복잡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실제로 만주 점령을 연장하려 할 경우 우리와 중국 정부의 관계는 이전의 모호한 성격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상호 합의에 의해 점령을 계속하게 될지라도, 중국 정부가 북경과의 연결 고리를 놓지 않고 있는 지역 당국들을 통해 갖가지 난관을 조성함으로써 만주에 있는 우리에게 온갖 방법으로 대항하고 해를 끼칠 가능성을 버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그디한(Богдыхан)주 010
각주 010)
몽골어의 ‘신성 군주’(богдо-хан)에서 나온 말로, 16~17세기 러시아에서 중국의 황제들을 지칭할 때 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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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우리를 대하는 태도는 만주를 병합하는 경우보다 덜 적대적일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정부는 점령이라는 것이 사태의 본질을 바꾸지는 못하므로 중국으로서는 어쨌든 이 지역을 상실했음을 당연히 이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만주를 점령하더라도 중국이 외국 열강들과 체결한 조약들은 폐기되지 않을 테고, 그래서 어쨌든 열강들은 자신들의 조약상의 권리를 들어 끊임없이 우리를 붙들고 늘어질 빌미를 여전히 갖게 될 것이다. 해서 우리는 형식적으로 만이라도 다른 열강들의 이익을 무례하게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절실한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어쩌면 희생까지 제법 따를지 모르는 출구를 찾을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만주 점령은 이 지역에서 나오는 수입을 챙길 가능성이란 면에서 볼 때 아주 유리한 것도 아니다. 보그디한의 최고 권력이 유지되는 이상 우리는 아무런 제재 없이 기존의 세금과 공물에 손댈 수 없으며, 우리 재량대로만 자유롭게 새로운 납세 의무를 정할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만주에서 따로따로 세금이 부과되는 민간기업이 발달할 때까지는 특별한 수입을 거의 기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점령이 뒤따르는 혼란한 시기에는 당연히 적지 않은 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듯, 만주를 장악하는 데 따른 제반 문제들이 만주를 병합할 시에는 상대적으로 단순하게 해결되는데, 점령을 연장할 경우에는 상당히 복잡해진다. 이 경우 지역 통치에 필요한 러시아 직원 문제까지도 병합의 경우와 마찬가지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는 점을 첨언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중국의 지방 당국도 당연히 가까이서 통치와 감독을 받지 않을 수는 없을 테고 여기에는 적지 않은 인원이 소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점령을 통하여 만주를 장악하는 것은 병합에 비해 굉장한 이점이 있다. 점령을 하면 다른 열강들에게 선례를 만들어 주지 않을 것이므로, 따라서 전적으로 불가항력적인 위력을 가진 ‘중국’ 문제가 불거지는 시기를 늦출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설명으로 볼 때 이 이점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지금 만주 병합 결정을 내리지 않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중요한 부분임을 인정해야 한다. 더욱이 우리 여론은 이 위대한 행보를 아직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상태이며, 또 이 문제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해서 문제가 지닌 엄청난 중요성에 심하게 놀랄 수도 있다.
그 결과 만주 병합 문제에 대한 결정이 일단 받아들여지면 실행 측면에서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런 결정으로 우리는 완전하게 군사행동의 자유를 얻을 것이며, 또 현지 집행자들이 주로 능숙하게 일처리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보고서를 쓸 때는 우리가 점령을 통해 만주를 장악할 경우 지침으로 삼게 될 세 가지 주요 방침을 꼭 다룰 것이다. 이 방침들은 만주 장악이 병합으로 완료되는 경우에도 일반적 지침이 될 수 있기에 더욱 그래야 한다.
 
이 과제를 실행에 옮길 때는 무엇보다 먼저, 만주 점령을 중국과의 별도 협정에 근거해 지속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것을 단지 기정 사실로 선언만 해도 되는지에 관한 원칙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문제를 두고 이미 수개월에 걸쳐 중국 정부와 협상을 진행했으나, 그들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협정의 형식을 따를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 북경 정부는 이른바 ‘보장 목록’의 여러 항목을 트집 잡으면서 사실상 만주에서의 이런저런 실질적 양보들에는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만주에서 보그디한의 최고 권한들을 보전할 것을 주장함으로써 오로지 “자신의 체면을 살리려” 애쓰고 있다. 게다가, 다른 외국 열강들이 러시아의 예를 좇지 않을 것과 중국의 다른 지역들과 관련해 중국에 그 유사한 조약들을 요구하지 않을 것을 보장받고 싶어 한다.
정의라는 차원에서 보면 중국으로서는 이런 바람들이 전적으로 타당하고 당연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만주에서 최고 권한을 일부나마 양보하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이미 인기가 없는 왕조에게 심각한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열강들도 그와 같은 조약을 요구함으로써 중국 정부는 틀림없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보그디한의 최고 권력을 보전해 주기 위해 약간은 양보할 수 있으나, 중국의 두 번째 바람과 관련해서는 전혀 힘을 쓸 수 없다. 이는 당연히 우리가 다른 열강들의 침략으로부터 중국의 보호를 떠맡는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부득이 우리는 우리를 흐뭇하게 해 줄 만주에 관한 러중 조약은 조인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만주 점령을 계속하기로 결정한 후 러시아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중국과의 합의 없이 일을 해결하면서 이유에 대한 설명을 공포하는 방식으로 중국에 이를 통보하고 끝내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시간을 버는 것 외에도, 우리가 완전한 군사행동의 자유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과, 다소 구속력이 있는 조약이 아니라 오로지 정의감과 본래의 우리 이익만을 따름으로써 만주에서의 입지를 안정시킬 가능성을 얻게 된다는 점에서 남다른 이익이 된다. 뿐만 아니라 이 방법은 중국에 대한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유리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이로 인해 중국 정부는 궁극적으로 만주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또는 적어도 그 재난의 순간을 늦추기 위해 우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 방법은 중국 정부로서도 더 구미가 당길 것이 분명하다. 이 방법이라면 중국 정부는 자국의 나약함을 증명할 불쾌한 조약에 서명해야만 하는 서글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데다가, 북경 정부와 황제의 체면을 살리면서도 러시아의 군사행동을 마음대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재 상황에서 벗어날 세 번째 출구도 당연히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어떤 선포나 해명도 없이 조용히 점령을 지속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선언이라는 두 번째 방법과 본질적으로 거의 차이가 없지만, 크나큰 단점이 있다. 국내외 여론을 의식해 현재의 모호한 상태를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위에서 이미 언급했듯 모호한 상황을 끝내는 것은 원래의 우리 이익으로 볼 때 아주 바람직하며 거의 필수적인 일이다.
 
이렇게 우리의 만주 점령을 연장할 외적 형식에 관한 원칙적 문제들을 마무리하고 나면, 만주에서 우리의 위상을 정립하는 데 지침으로 삼게 될 주요 방침에 대해 적절한 때 언급을 할 것이다. 이 경우 황제 폐하께서 극동총독주 011
각주 011)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알렉세예프(Евгений Иванович Алесеев, 1843~1918)를 가리킴. 해군제독, 시종무관장. 1895~1897년 태평양 함대를 지휘하였고, 1899년 8월부터 관동주(關東州, 요동반도 남쪽에 설정된 조차지) 총사령관 및 극동 해군사령관으로 활동함. 1903년 극동총독에 위임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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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부여한 중대하고도 폭넓은 전권에 주목한다면, 어떤 세부사항으로 들어가는 것은 전혀 불필요하며 다만 일반적인 의견을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만주에서 우리의 위상을 정립하려면 다음의 세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매진해야만 합니다.
1. 이 지역에 가장 단순하면서도 될 수 있는 한 비용이 적게 드는 행정기구를 설치한다.
2. 우리의 국고를 위해 이 지역에서 가능한 한 많은 수입을 얻어낸다.
3. 중국인 및 외국인 전체와 우리의 관계를 최선의 형태로 정립한다.
 
이 중 첫 번째 과제를 검토할 시에는 다음 사항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점령을 통해 만주를 장악할 경우 우리는 이 지역에서 보그디한의 최고 권력을 보전해야만 하고 따라서 중국 지방 당국과 북경과의 일부 연계도 보전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연계를 담당하는 자는 장군(цзянь‐цзюнь)주 012
각주 012)
將軍. 중국 중앙 정부와는 반(半) 독립적인 군벌적 성격을 지닌 지역의 지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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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로, 최소한 초기에는 이들을 제거하는 것이 적절하지는 않을 것 같다.
우리의 국익을 위해서는 이런 연계 및 북경 정부의 권력 전반이 만주에서 단지 형식적으로만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과, 실질적으로 북경 정부는 만주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개입할 가능성에서 완전히 배제되어야 한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때문에 한편으로는 장군직을 교체하는 데 필요한 적당한 인물들을 선택하는 것과, 다른 한편으로는 극동에서는 총독으로 인격화되는 러시아 정권의 대표들이 올바른 조직화를 통해 중국의 이 고위 관료들을 지휘, 감독하는 것은 우리에게 특히 큰 의미가 있다.
지역-당연히 철도용지 밖의-을 통치하는 데 우리가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는 그런 활동을 위해 준비된 인원이 우리에겐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그런 개입으로 발생할 비용이 엄청나게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개입을 하면, 온갖 단점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중국인들이 매우 소중히 여기는 낡은 체제가 너무 급격히 붕괴해 버려 러시아의 과업에 해를 끼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을 억압하는 관료사회의 해악스러운 압제를 약화시켜 우리의 위상을 공고히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우리가 만주에 발판을 구축하는 첫걸음부터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중국 인민들에게 아주 익숙한 선출직 대표자를 지방 행정기관 및 법정에서 매우 폭넓게 활용하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이와 같은 방침은 관료들의 수를 감소시킴으로써 만주에서 당연히 발생하게 될 행정, 재판 및 조세 문제들을 올바로 해결하는 데 확실히 도움이 될 것이다. 각 단체에서 선출된 관료들이나 여전히 필요악으로 남아 있는 관료들 모두 역시 현지의 러시아 권력을 대표하는 자들에게 충분한 지휘와 감독을 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제, 만주에서 우리의 위상을 이용해 국고에 필요한 수입을 가능한 한 많이 얻어내야 한다는 두 번째 과제로 넘어가면서 지적해 둘 점이 있다. 만주를 점령한다고 해서 현재 중국 정부가 징수하고 있는 세금과 공물을 우리가 쓸 권리가 생기지는 않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그릇되고 적대적이기까지 한 행위들 때문에 점령이 필요해진 것이라면, 어쩔 수 없는 점령 때문에 우리가 감당하게 된 비용의 일부라도 보충하기 위해 만주에서 나오는 국가 수입의 일정 부분에 대해 우리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도 되며 또 그렇게 생각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 수입의 일부는 이미 중국이 지닌 약간의 금전적 의무에 대한 담보로 외국인들에게 이를테면 저당잡혀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시간이 흘러 중국 정부가 만주 점령을 받아들이게 되면 세금과 공물 부문에 세금 징수 대리제도(откупная система)주 013
각주 013)
국가가 조건을 붙여 일정 기간 개인에게 세금 징수권을 양도하는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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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제도는 중국의 이익을 전혀 침해하지 않으면서 확실히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수입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래도 역시 점령 중인 만주에서 우리의 주요 수입 항목은 오로지 제대로 조직되고 적당한 세금이 부과되는 민간기업일 것이다. 이런 면에서 반(半)국유의 거대 상공회사를 설립하면 틀림없이 우리의 과업에 엄청난 이익이 될 것이다. 바로 이런 회사만이 국고의 이익과 순수한 상업적 요구에 부합하는 올바른 방향을 민간기업에 제시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우리의 만주 점령을 공고히 하기 위한 세 번째 과제, 즉 중국인 및 외국인 전체와 최선의 관계를 정립하는 문제에 주목할 경우 다음의 사항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중국인과 관련해서는 러시아 정권의 대표들을 적절하게 선택하는 일이 거의 결정적이고도 굉장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왜냐하면 중국의 관료 및 선출 관료들을 지휘, 감독하는 일이 바로 이들에게 위임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일에 임명된 인사들은 자신에게 부과된 임무가 국가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확실히 인식해서, 주민들에게 러시아의 통치 양식이 중국의 통치 양식보다 우수한 점을 모두 입증해 보이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들은 관료들의 횡포로부터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그것을 위한 조처들이 수세기에 걸쳐 형성된 중국인들의 생활양식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이를 위한 다른 방법은 러시아 공민들과 동등하게 중국인들에게 모든 상업 회사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것은 러시아인과 중국인 사이에 업무상의 연계를 확립하는 근거가 될 터, 이 업무상의 연계는 당연히 공동의 이익에 기초한 좋은 관계가 오래 유지되는 데 최고의 보증 역할을 할 것이다.
외국인 전체와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것도 바로 이런 판단에 의거해야 한다. 만주 문제에서 현재 반러파의 선봉에 있는 일본까지 포함해 외국 열강들은 무역상의 이해관계 외에는 그곳에 다른 이해관계가 전혀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따라서 우리가 모든 국가들의 교역을 위해 만주를 개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열강들은 그 안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간파하고는 틀림없이 우리의 만주 점령을 받아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들은 러시아가 반드시 만주에 안착할 것임을 이미 벌써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일 그들이 우리의 안착에 반대한다면 이것은 다만 그들이 자국의 무역상의 이익은 침해받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확신을 갖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다. 일단 그들이 서류상으로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이런 확신을 갖게 되면, 반대는 자연스럽게 중단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다음의 사항은 꼭 염두에 두어야 한다. 대외무역을 위해 만주를 개방할 때는 정치적 이익뿐만 아니라 가능한 수준에서 경제적 이익까지도 보호하기 위한 가장 면밀한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물론 어느 정도의 희생은 피할 수 없는데, 그것은 우리가 과거에 저르는 오류에 대해 대가를 지불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대로 경제 계획을 세우고 위에서 언급한 거대한 상공회사를 적절하게 조직하면 우리는 아주 많은 것을 손에 쥘 수 있으며, 외국인들에게 좋은 돈벌이를 제공함으로써 상당한 수입을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모든 외국 열강 가운데 경제 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나라는 분명 미국이다. 왜냐하면 미국은 정치적 음모에 누구보다도 관심이 없는 나라이기도 하고, 또 가까운 미래에 태평양에서 당연히 매우 대단한 역할을 하게 되어 있는 국가와 견고하게 우호의 연을 맺어 놓는 것은 우리에게 특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금전적 이익에 민감해서 틀림없이 아주 적극적으로 우리를 맞아들일 것이며, 우리가 자본가층 가운데 착실한 자본가들에게 만주뿐만 아니라 우리의 동쪽 경계도 허용할 수 있다고 한다면 특히 더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동쪽 경계에는 단지 자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어마어마한 공간이 사장된 채 있는데, 러시아에 그런 자금을 속히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자본은 우리의 황무지에 생기를 불어넣어줄 것이고, 사업을 올바르게 조직할 경우 그 결과물들은 기업가의 이윤뿐만 아니라 우리의 국고 수입에도 유익하게 작용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주요 방침들로, 이는 만주에서 우리가 가진 입지를 이용할 때, 즉 첫 번째 과제를 달성할 때 지침이 될 것이다. 첫 번째 과제는 일본이 한국으로 진출하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지금 전쟁을 피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생긴 것이다.
이제 다른 두 가지 과제를 다루는 일이 남았다.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이 과제들이 제기된 원인은, 첫째, 미래에 일본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도록 우리의 병력을 준비시키는 것이고, 둘째, 바로 이러한 목표를 가지고 유리한 정세를 조성하는 것이다.
 
우리 병력을 준비시키는 문제는, 의심의 여지없이, 황족인 극동 총독의 적절한 진술을 통해 이미 충분히 설명이 되어서 그것을 상세히 언급하는 것은 전혀 필요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임박한 전쟁을 예견한 총독이 자신의 판단에 따라 본 보고서에 근거한 결정과 약간 다른 관점을 따랐을 수도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설명은 필요할 것 같다.
전쟁 임박 가능성이 적은 현 정세에서 극동에 있는 우리 병력을 강화한다는 것은 반드시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는 일이다.
첫째, 한국에 상륙한 일본의 공격으로부터 만주 내 우리 입지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
둘째, 일본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기 위해 철저하게 우리의 전투 태세를 완비하는 것.
첫 번째 목표를 추구하는 일은 지체 없이 시작해야 하며, 한국에서 일본의 군세가 증대하는 것과 나란히 진행해야 한다. 이때, 후방의 준비 상황과 이런 과도기에서는 부차적 의미를 갖는 기지 건설에 특별한 긴박감을 주지 않고, 주로 우리 병력의 인원수를 증가시키는 것에만 국한시켜도 된다.
두 번째 목표를 달성할 때는 군사행동을 매우 점진적으로 실시하면서 우리의 전투태세를 완비해 놓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따른 실행 조치에는 병력 수 증대뿐만 아니라 육해상 기지 설비, 교통로 건설, 그리고 유럽러시아에서 오는 증원대를 신속히 수송할 준비 등이 들어가야 한다. 이런 조치들이 갖는 긴장감의 정도는 일본 공격 시기에 대해 국가 전체의 판단에 의거해 우리가 내린 결정과 일본의 군사행동 양식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그러므로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유리한 정세를 조성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가 쓸 수 있는 남은 시간을 활용해야 한다. 이것이 임박한 우리의 군사행동에 맡겨진 최후의 굵직한 과제인 것이다.
외국 열강들과 좋은 관계를 확립하는 문제는 위에서 만주 내 우리 입지를 공고히 하는 방법을 검토할 때 충분하고 상세하게 조명한 바 있다. 그러므로 외무부는 외국 열강이 앞으로 만주 문제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우리와 일본의 분쟁이 최종 해결되는 데 간섭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확실한 기회를 엿보아야 한다.
이렇게 해서 우리에게는 우리의 전진정책에 누구보다도 이해관계를 가진 중국, 한국, 일본과 우리의 관계를 정립하는 문제에 대해 몇 가지 의견을 덧붙이는 일만 남았다.
사실을 말하면, 우리는 만주 점령의 당연한 결과로 중국 정부가 보일 수밖에 없는 어느 정도의 적대감에 다소 무관심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중국과 좋은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만주에 있는 기업들에 중국인들을 대거 취직시키는 것 외에도, 분명 중국에 불쾌한 사안들에는 특히 개입하지 않으면서 북경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제 문제들에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일도 없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보그디한 정부가 러시아의 지지를 구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 수 있고, 그 결과 서서히 이웃과 좋은 관계가 정립될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몽골과 중국령 투르케스탄에서 영향력을 확고히 하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말고 가장 열정적인 조치들을 취해야만 한다. 이것은 일본과의 전쟁 시 후방에 대한 최고의 안전 확보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중국’ 문제를 해결할 시기가 왔을 때 그것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한 토대 마련을 위해서도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
한국에 대해 말하자면, 우리는 그곳에서 일본에 일시적으로 자리를 내주더라도 한편으로는 한국 인민들에게 희미하게 남아 있는 러시아에 대한 호감을 유지시켜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이 한국에서의 영향력을 확실히 굳히는 일을 어렵게 만들어야 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어쩌면 서울에 외교 공사관을 유지시키는 것이 부적절해지더라도 한국에 주재하는 우리의 공식 대표부를 완전히 폐지할 수는 없다. 게다

  • 각주 001)
    의화단의 난을 가리킴.  바로가기
  • 각주 002)
    묵덴은 현재의 심양임.  바로가기
  • 각주 003)
    청나라 말부터 중국 만주 지방에 있었던 마적으로, ‘붉은 수염’이라는 뜻을 가진 악명 높은 기마 무장집단.  바로가기
  • 각주 004)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일어난 ‘황인종 경계론’(yellow peril)을 말함.  바로가기
  • 각주 005)
    러시아 입장에서 동방(Восток)은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지역 및 극동(極東, Дальний Восток)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먼 동쪽이라는 의미의 극동과 대비시켜 중앙아시아 지역은 가까운 동쪽이라 하여 근동(近東, Ближний Восток)이라 부른다. 이는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를 기준점으로 두고 생각한 까닭이다. 바로가기
  • 각주 006)
    1812년 러시아를 침공했던 나폴레옹 군대를 말함. 나폴레옹 군대는 러시아 군과 민간인들의 기습적인 게릴라 공격으로 많은 타격을 입은 바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7)
    일본어로 미카도(Mikado)는 ‘帝(御門)’로 속세의 최고 통치자, 즉 천황을 가리킴.  바로가기
  • 각주 008)
    서태후(西太后)를 가리킴. 바로가기
  • 각주 009)
    중국령 투르케스탄이란 현재의 신장위구르 자치구를 말한다. 투르케스탄은 역사적으로 크게 두 지역으로 나뉘는데, 신장위구르 자치구인 동투르케스탄과, 우즈베키스탄 · 투르크메니스탄 · 키르기즈스탄 · 카자흐스탄 등을 아우루는 서투르케스탄이 그것이다. 바로가기
  • 각주 010)
    몽골어의 ‘신성 군주’(богдо-хан)에서 나온 말로, 16~17세기 러시아에서 중국의 황제들을 지칭할 때 쓰임.  바로가기
  • 각주 011)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알렉세예프(Евгений Иванович Алесеев, 1843~1918)를 가리킴. 해군제독, 시종무관장. 1895~1897년 태평양 함대를 지휘하였고, 1899년 8월부터 관동주(關東州, 요동반도 남쪽에 설정된 조차지) 총사령관 및 극동 해군사령관으로 활동함. 1903년 극동총독에 위임됨.  바로가기
  • 각주 012)
    將軍. 중국 중앙 정부와는 반(半) 독립적인 군벌적 성격을 지닌 지역의 지배자.  바로가기
  • 각주 013)
    국가가 조건을 붙여 일정 기간 개인에게 세금 징수권을 양도하는 제도.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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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극동정책 보고서 Ⅰ 자료번호 : kifr.d_0002_003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