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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天方)의 다른 이름과 거리 및 조공 사신의 통행로에 관한 내용

 
  • 국가천방(天方)
천방(天方) [주001]
각주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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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方: 메카(Mecca)를 가리킨다. 사우디아라비아 서쪽의 히자즈(Hejaz) 지방에 위치한다. 메카는 아랍어로 마카 알-무카르라마(Makkah al-Mukkarama)라고 하는데, ‘고결한 도시’라는 뜻이다. 전설에 의하면, 아담과 이브가 만년에 살았던 곳이라 하며, 아브라함이 아들 이스마엘과 그의 어머니 하갈을 살게 한 곳이라고도 한다. 메카 계곡의 가장 낮은 곳에는 잠잠 우물과 아브라함이 건립한 것으로 전해지는 카바 신전이 있다. 카바 신전에는 신성한 검은 돌을 비롯하여 아랍 부족민들이 숭배하는 여러 우상들이 모셔져 있었다. 한편 메카는 고대부터 인도양과 지중해 연안 및 메소포타미아와 홍해 연안으로 통하는 통상로로 발달하였으며, 2세기 때의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책에도 마코라바(Macoraba)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6세기 무렵부터 비잔틴 제국과 페르시아 사산조 간의 오랜 전쟁으로 말미암아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왕래하던 대상들은 다른 지역보다 안전한 아라비아 반도를 바다로 통하는 길로 선호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환경에서 메카는 무역 중계지로 번창하였다. 당시 아랍 부족 중 쿠라이쉬族이 5세기 후반부터 메카의 상권을 장악하였으며, 570년경에 그 支派인 하쉼家에서 무함마드가 태어났다. 그 후 그는 신의 계시를 받아 이슬람을 창시하였다. 여러 우상들이 모셔져 있던 카바 신전은 630년 예언자 무함마드가 무슬림군을 이끌고 메카를 정복한 뒤 유일신 알라의 신전으로 바꾸었으며, 그때부터 메카는 이슬람 세계의 대표적인 성지가 되었다. 한편 메카를 중심으로 지름 약 100km의 지역이 하람(성역)이며, 13억이 넘는 전 세계의 무슬림들이 북위 21도 25분 24초, 동위 49도 24분에 위치한 메카의 카바 신전을 향해 예배를 드리는데, 이 기도의 방향을 ‘끼블라(qiblah)’라고 한다. 메카를 비롯하여 이슬람의 성지를 방문하는 순례 ‘핫지(Hajj)’는 무슬림으로서 지켜야 할 5가지 의무 중 하나이며, 해마다 순례의 달인 ‘두 알 힛자’(Dhu al-Hijja, 이슬람력 12월)에는 약 250만 명의 순례자가 모여든다. 순례자들은 메카의 중심인 카바 신전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7번 도는 의식을 치르는데, 가능하다면 신전의 중앙에 위치한 높이 12m의 흑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성묘에 입을 맞추거나 손으로 만지곤 한다. 그러나 메카는 이슬람 제국 수도로서의 지위를 유지하지는 못하였다. 683년 우마이야조의 칼리프 야지드(Yazid)가 칼리프조의 수도를 다마스쿠스로 옮겼으며, 그 뒤를 이은 아바스조의 수도는 바그다드였다. 1517년 이후 메카를 비롯한 아라비아 반도 전역이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통치하에 들어가지만, 메카는 제4대 正統 칼리프 알리(Ali)의 자손임을 주장하는 하쉼家의 수장에 의해서 지켜져 왔다. 1926년 하쉼가는 사우드家에 의해 메카의 통치권을 빼앗겼으며, 이후 메카는 사우디아라비아로 통합되었다. 한편 메카가 중국 史書에 처음 등장한 것은 南宋 시대인데, 淳熙 5년(1178) 周去非가 지은 『嶺外代答』에서 麻嘉國이라 표기하였다. 『宋會要』에서는 摩迦라고 하였고, 『諸蕃志』에서는 麻嘉라고 하였다. 『明史』에서는 默伽라고도 칭하였다. 三寶太監 鄭和가 南洋 원정을 할 때 부하 馬歡 등 7인이 瓷器 등 물품을 가지고 天方國에 이르러 사자와 타조를 구매하고, 아울러 『天堂圖』 1책을 그려서 귀국하였다. 天方 즉 메카에서도 大臣을 보내어 方物을 가지고 馬歡 등 7인을 따라 入朝하였다.

은 고대의 균충(筠沖) 땅으로, 일명 천당(天堂)이라고도 하고, 또 묵가(默伽)라고도 한다. 수로(水路)로 홀노모사(忽魯謨斯) [주002]
각주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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忽魯謨斯: Hormus의 음을 그대로 표기한 것으로, 이란 남부의 호르무즈 해협을 가리킨다. 14세기 호르무즈 항구는 지금 이란의 Qeshm 동쪽의 호르무즈섬이다(黃省曾, 2000: 106). 그리고 이 나라는 당시 그 지역에서 상당히 영향력을 가진 나라였다. 이 지역은 지리적 여건상 농업이 어려워 생산량이 적었으나, 잣·석류·건포도 등의 수확량은 많은 편이었다(上杉千年, 2007: 130~131).

에서 40일 걸려 비로소 이르고, 고리(古里) [주003]
각주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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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里: 宋代에는 南毗國(Namburi)이라고 했고, 元代의 『島夷誌略』에는 古里佛이라고 기재되어 있으며, 명대의 『瀛涯勝覽』에는 古里라 기재되어 있다. 그런데 『殊域周咨錄』을 보면, 고리국을 西洋고리국으로 칭한다고 하였다(『殊域周咨錄』 卷8 「鎖里·古里條」 참조). 이 나라의 영토는 대략 지금의 인도 서남쪽 Kozhikode 일대이다. 이 나라의 원래 이름은 Kallikot이었는데, 古里는 그것을 줄여서 음역한 것이다. 후에 유럽인들이 Calicut이라 불렀다. 고리와 중국의 관계는 당대부터 시작되었다. 이 지역은 해상 교통의 요충지로, 중국은 이곳을 주요한 전진기지로 삼았는데, 인도산 면화와 옥양목의 집산지로서의 대규모 무역항 역할을 하였다. 명대에 고리의 군주는 1405~1419년 사이에 남경과 북경에 외교사절을 꾸준히 파견하였고, 그들이 보낸 사절단이 자금성 낙성식에 참여하여 영락제에게 귀한 말을 선물하기도 하였다(개빈 맨지스, 2004: 114~115).

에서 서남 방면으로 가면 3개월 걸려 비로소 이른다. 그들 조공사신은 대부분 육로(陸路)를 따라 가욕관으로 들어왔다.

 

주 001
天方: 메카(Mecca)를 가리킨다. 사우디아라비아 서쪽의 히자즈(Hejaz) 지방에 위치한다. 메카는 아랍어로 마카 알-무카르라마(Makkah al-Mukkarama)라고 하는데, ‘고결한 도시’라는 뜻이다. 전설에 의하면, 아담과 이브가 만년에 살았던 곳이라 하며, 아브라함이 아들 이스마엘과 그의 어머니 하갈을 살게 한 곳이라고도 한다. 메카 계곡의 가장 낮은 곳에는 잠잠 우물과 아브라함이 건립한 것으로 전해지는 카바 신전이 있다. 카바 신전에는 신성한 검은 돌을 비롯하여 아랍 부족민들이 숭배하는 여러 우상들이 모셔져 있었다. 한편 메카는 고대부터 인도양과 지중해 연안 및 메소포타미아와 홍해 연안으로 통하는 통상로로 발달하였으며, 2세기 때의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책에도 마코라바(Macoraba)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6세기 무렵부터 비잔틴 제국과 페르시아 사산조 간의 오랜 전쟁으로 말미암아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왕래하던 대상들은 다른 지역보다 안전한 아라비아 반도를 바다로 통하는 길로 선호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환경에서 메카는 무역 중계지로 번창하였다. 당시 아랍 부족 중 쿠라이쉬族이 5세기 후반부터 메카의 상권을 장악하였으며, 570년경에 그 支派인 하쉼家에서 무함마드가 태어났다. 그 후 그는 신의 계시를 받아 이슬람을 창시하였다. 여러 우상들이 모셔져 있던 카바 신전은 630년 예언자 무함마드가 무슬림군을 이끌고 메카를 정복한 뒤 유일신 알라의 신전으로 바꾸었으며, 그때부터 메카는 이슬람 세계의 대표적인 성지가 되었다. 한편 메카를 중심으로 지름 약 100km의 지역이 하람(성역)이며, 13억이 넘는 전 세계의 무슬림들이 북위 21도 25분 24초, 동위 49도 24분에 위치한 메카의 카바 신전을 향해 예배를 드리는데, 이 기도의 방향을 ‘끼블라(qiblah)’라고 한다. 메카를 비롯하여 이슬람의 성지를 방문하는 순례 ‘핫지(Hajj)’는 무슬림으로서 지켜야 할 5가지 의무 중 하나이며, 해마다 순례의 달인 ‘두 알 힛자’(Dhu al-Hijja, 이슬람력 12월)에는 약 250만 명의 순례자가 모여든다. 순례자들은 메카의 중심인 카바 신전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7번 도는 의식을 치르는데, 가능하다면 신전의 중앙에 위치한 높이 12m의 흑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성묘에 입을 맞추거나 손으로 만지곤 한다. 그러나 메카는 이슬람 제국 수도로서의 지위를 유지하지는 못하였다. 683년 우마이야조의 칼리프 야지드(Yazid)가 칼리프조의 수도를 다마스쿠스로 옮겼으며, 그 뒤를 이은 아바스조의 수도는 바그다드였다. 1517년 이후 메카를 비롯한 아라비아 반도 전역이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통치하에 들어가지만, 메카는 제4대 正統 칼리프 알리(Ali)의 자손임을 주장하는 하쉼家의 수장에 의해서 지켜져 왔다. 1926년 하쉼가는 사우드家에 의해 메카의 통치권을 빼앗겼으며, 이후 메카는 사우디아라비아로 통합되었다. 한편 메카가 중국 史書에 처음 등장한 것은 南宋 시대인데, 淳熙 5년(1178) 周去非가 지은 『嶺外代答』에서 麻嘉國이라 표기하였다. 『宋會要』에서는 摩迦라고 하였고, 『諸蕃志』에서는 麻嘉라고 하였다. 『明史』에서는 默伽라고도 칭하였다. 三寶太監 鄭和가 南洋 원정을 할 때 부하 馬歡 등 7인이 瓷器 등 물품을 가지고 天方國에 이르러 사자와 타조를 구매하고, 아울러 『天堂圖』 1책을 그려서 귀국하였다. 天方 즉 메카에서도 大臣을 보내어 方物을 가지고 馬歡 등 7인을 따라 入朝하였다.
주 002
忽魯謨斯: Hormus의 음을 그대로 표기한 것으로, 이란 남부의 호르무즈 해협을 가리킨다. 14세기 호르무즈 항구는 지금 이란의 Qeshm 동쪽의 호르무즈섬이다(黃省曾, 2000: 106). 그리고 이 나라는 당시 그 지역에서 상당히 영향력을 가진 나라였다. 이 지역은 지리적 여건상 농업이 어려워 생산량이 적었으나, 잣·석류·건포도 등의 수확량은 많은 편이었다(上杉千年, 2007: 130~131).
주 003
古里: 宋代에는 南毗國(Namburi)이라고 했고, 元代의 『島夷誌略』에는 古里佛이라고 기재되어 있으며, 명대의 『瀛涯勝覽』에는 古里라 기재되어 있다. 그런데 『殊域周咨錄』을 보면, 고리국을 西洋고리국으로 칭한다고 하였다(『殊域周咨錄』 卷8 「鎖里·古里條」 참조). 이 나라의 영토는 대략 지금의 인도 서남쪽 Kozhikode 일대이다. 이 나라의 원래 이름은 Kallikot이었는데, 古里는 그것을 줄여서 음역한 것이다. 후에 유럽인들이 Calicut이라 불렀다. 고리와 중국의 관계는 당대부터 시작되었다. 이 지역은 해상 교통의 요충지로, 중국은 이곳을 주요한 전진기지로 삼았는데, 인도산 면화와 옥양목의 집산지로서의 대규모 무역항 역할을 하였다. 명대에 고리의 군주는 1405~1419년 사이에 남경과 북경에 외교사절을 꾸준히 파견하였고, 그들이 보낸 사절단이 자금성 낙성식에 참여하여 영락제에게 귀한 말을 선물하기도 하였다(개빈 맨지스, 2004: 114~115).
 
지명
천방(天方) , 균충(筠沖) , 천당(天堂) , 묵가(默伽) , 홀노모사(忽魯謨斯) , 고리(古里) , 가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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