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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노상선우(老上單于)가 죽고 군신선우(君臣單于)가 즉위함

  • 국가
    흉노(匈奴)
그로부터 4년 뒤에주 001
각주 001)
“後四年”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漢 文帝 後元 4년(전160)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老上單于가 실제로 사망한 연도는 後元 3년(전161)이기 때문이다. 또한 “後四年”이라고 한 것은 다음에 벌어진 文帝와 匈奴의 화친 논의가 전개된 것이 後元 4년(전160)이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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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선우 주 002
각주 002)
『史記』에는 “老上稽粥單于”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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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죽고 [그의] 아들 군신(軍臣)선우 주 003
각주 003)
軍臣單于(재위 전161~전126) : 匈奴의 4대 單于이다. 冒頓單于의 손자로 부친 老上單于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부친이 漢나라와 체결하였던 평화조약을 파기하고 漢의 북변을 여러 차례 침범하였다. 景帝 때에는 漢나라의 公主를 연지로 맞이했고, 貢納도 받으면서 한편으로는 빈번히 교역함으로써 이득을 보았다. 그러나 武帝가 즉위한 뒤로는 다시 침공을 시작하여 서로 항쟁을 되풀이함으로써 치세 후반부터 점차 쇠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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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즉위하니 중항열이 그를 다시 섬겼다. 한나라는 다시 흉노와 화친을 하였다.주 004
각주 004)
『史記』에는 “旣立, 孝文皇帝復與匈奴和親. 而中行說 復事之.”로 내용이 도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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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1)
    “後四年”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漢 文帝 後元 4년(전160)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老上單于가 실제로 사망한 연도는 後元 3년(전161)이기 때문이다. 또한 “後四年”이라고 한 것은 다음에 벌어진 文帝와 匈奴의 화친 논의가 전개된 것이 後元 4년(전160)이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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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史記』에는 “老上稽粥單于”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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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軍臣單于(재위 전161~전126) : 匈奴의 4대 單于이다. 冒頓單于의 손자로 부친 老上單于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부친이 漢나라와 체결하였던 평화조약을 파기하고 漢의 북변을 여러 차례 침범하였다. 景帝 때에는 漢나라의 公主를 연지로 맞이했고, 貢納도 받으면서 한편으로는 빈번히 교역함으로써 이득을 보았다. 그러나 武帝가 즉위한 뒤로는 다시 침공을 시작하여 서로 항쟁을 되풀이함으로써 치세 후반부터 점차 쇠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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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4)
    『史記』에는 “旣立, 孝文皇帝復與匈奴和親. 而中行說 復事之.”로 내용이 도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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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노상선우, 군신(軍臣)선우, 중항열
지명
한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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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선우(老上單于)가 죽고 군신선우(君臣單于)가 즉위함 자료번호 : jo.k_0002_0094_0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