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평양성
조선시대 평양성
평양성은 고려말 홍건적의 침략으로 무너졌고, 조선 태조 2~3년에 복구되었다. 그리고 조선 태종 9년에 수축한 둘레 4,088보의 읍석성과 태종 6년에 개축한 돌로 쌓은 둘레 24,539척의 내성은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평양성의 규모를 조선 세종 때 營造尺(31.24cm)과 布帛尺(46.73cm)로 계산 해 보면 내성은 둘레가 7,666~11,467m, 높이가 약 4~6m 이고, 외성은 5,750~86,006m, 높이가 약 10~15m가 된다.북한에서 조사한 평양성은 『조선유적유물도감』에 따르면, 외곽성의 둘레가 약 16km이며, 각 부분을 나누는 성벽까지 포함하면 23km라고 한다. 그러나 고고학 조사를 통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평양성 현황에 대하여 명확히 구분된 바가 극히 드물어 문헌적 고찰의 한계를 절감한다.
윤두수 『평양지』에는 府城으로 되어 있다. 태종 때 개축 시기에 차이가 있지만, 개축이 태종 6년에 시작하여 9년에 완공된 것을 의미한다. 태종 때 개축된 부성(읍성, 내성)은 정동문이 大東門, 동문이 장경문, 서문이 보통문, 정남문이 정양문, 남문이 함구문, 북문이 칠성문이었다. 大東門은 大同門과 같은 문으로 판단된다. 정리하면 조선태조는 홍건적에게 파괴된 고려 서경의 舊城 즉 內城을 복구하였으며, 태종은 그것을 이어받아 개축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볼 때 조선 전기 읍성, 부성, 내성으로 불려진 이 성과 각 문들은 고려말 서경성 내지 평양성 모습을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세종실록』과 『고려사』의 지리지에 의하면 조선 초기 평양에는 실제로 기능하고 있는 읍석성 말고, 古城터가 둘 있었다. 하나는 기자 때 쌓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려 성종 때 쌓은 것이라 한다. 기자 때 쌓은 설을 소개한 『여지승람』의 외성과 같은 것이니, 그 남문은 거피문, 서문은 다경문이었다. 물론 외성과 기자와 관련설은 조선 지식인의 생각일 뿐 근거가 없다. 고려 성종 때 서경에 성을 쌓은 기록이 없어 신빙성이 없지만, 고려 때 성이며, 현종 대 쌓은 황성의 남벽으로 판단된다.
고려말~조선전기 평양에는 서경성으로 기능하다가 홍건적에게 불타고 조선 전기에 복구되어 평양부의 부성으로 기능한 내성이 존재했으며, 그 바깥 쪽에 외성이, 그 안쪽에 황성의 남벽이 기능을 상실하여 폐허 상태의 古城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조선 인조 2년(1624)에 부성(내성)이 커서 지키기 어려워 그 서 남폭을 축소 개축하여 그 안의 북쪽에 새로운 부성(내성)을 건축하였다. 내성에는 성문이 5개소로 대동문, 주작문(남문), 정해문, 칠성문, 장경문이며, 각 성문에는 門樓가 相灝樓, 超然臺, 反求亭, 鍊光亭이 있다. 성 내 중요시설물로는 上衙·二衙와 中營 建物, 武器庫와 倉庫 등이 배치되었다. 그리고 기존의 부성(내성) 중 새로운 부성(내성)을 제외한 남쪽 부분은 中城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중성과 그 남문으로 전환된 정양문, 함구문은 보존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너져 옛 터로 남게 되었으며, 외성은 방치되어 황폐의 정도가 더 심해졌다. 새로운 부성(내성)은 ‘개축’이라 표현되었듯이 북동서벽은 기존 내성의 성벽을 이용하였으며, 남벽은 고려 고성 즉 황성의 남벽터를 바탕으로 하였다고 여겨지는데, 서남쪽은 서남 폭의 축소를 강조한 점으로 보아 약간 더 축소되었다고 판단된다.
또한 북성이 조선 숙종 40년(1714) 새로운 부성(내성)의 북쪽에 창축되었다. 門樓인 浮碧樓와 乙密臺가 있고, 성 안에는 永明寺와 文武井 및 고구려 동명왕 설화와 관련 있는 麒麟窟이 있다 북성을 건축한 이유는 모란봉 지역을 적에게 점령당하면 내성이 위험해 진다는 것이었으며, 이 성을 쌓는 과정에서 옛 성이 발견되었다. 북한 연구자들은 이러한 점을 가지고 북성은 고구려 때부터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역시 같은 이유로 고려 때도 존재했을 가능성이 큰데, ‘창축’이라 되어 있지만, 많은 부분은 고려 때 성터를 활용하였으리라 짐작된다. 북성이 건축된 이후 1732년(영조 8)에 토성을 증축하였다. 그 성안에는 함구문과 정양문 등 성문과 日影池와 月影池 등 연못이 있다. 조선후기 평양성은 제 기능을 발휘한 새로운 부성(내성)과 북성, 그리고 황폐화되어 간 중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