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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평양성

문헌을 통해 본 평양성의 역사

고구려는 졸본도읍기(건국~AD 3)과 국내성도읍기(AD 3~427), 전기평양도읍기(AD 427~586)의 왕도에는 평지 거주성의 왕성과 배후에 유사시에 사용하는 산성으로 방어성이 하나의 셋트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 고구려도성의 특징처럼 알려져 왔다. 『三國史記』에 의하면 長壽王 15년(427)에 평양으로 도읍을 옮겼다. 그 후 양원왕 8년(552)에는 長安城을 축조하였고, 平原王 28년(586)에는 다시 장안성으로 옮겼다 그러나 고구려의 평양에는 도성이 2개가 존재하지만, 그 성들에 대한 구체적인 위치 비정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들이 있다. 다양한 견해에 대해서는 소략한 문헌기록과 평양에 대한 일제 강점기의 연구성과와 현재 남한 학자가 실제 조사할 수 없는 지역이기에 북한 학자의 견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 서경성은 북한의 고고학 조사와 조선시대 기록을 바탕으로 한 연구성과가 있다. 그 연구에 의하면 고려시대 서경성도 고고학 발굴조사 없이 문헌 고찰에 의한 한계로 그 현황을 명확히 구분할 수가 없다고 한다. 조선시대 평양성은 고구려시대 장안성과 고려시대에 활용되었던 서경성을 기반으로 축조된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서는 일찍부터 고구려 평양성과 장안성, 고려 서경성으로 비정되던 성곽들에 대한 현황과 조선시대 평양성의 현황을 살펴봄으로써 조선시대의 평양성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히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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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을 통해 본 평양성의 역사 자료번호 : ispy.d_0001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