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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발해 문화유산 지도

영안 상경성

영안 상경성 항공사진(ⓒ『육정산과 발해진』)
영안 상경성 제1궁전지
발해 5경 중의 하나인 상경용천부성위치 이다. 지금의 흑룡강성(黑龍江省) 영안현(寧安縣)에 있다. 발해의 제3대 문왕 대흠무(大欽茂)가 755년 무렵 이곳으로 천도하였다. 785년 무렵 다시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로 천도하더니 제5대 성왕 대화여(大華璵)에 이르러 다시 수도를 이곳으로 옮겨 발해국이 망할 때까지의 수도였다. 동북아역사넷>상경(영안)
『요사(遼史)』에는 ‘홀한성(忽汗城)’이라고 적혀 있는데, 이는 상경용천부가 홀한하(忽汗河), 즉 지금의 목단강(牧丹江) 변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거란에 의해 발해가 멸망되고, 동단국이라는 국가가 잠시 들어섰다가 그 뒤에는 폐허가 되었다. 성터와 왕궁터가 남아 있다.
성터는 외성, 궁성, 황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외성(外城)은 동서 4,650m, 남북 3,530m의 긴 네모꼴로서 높이 4m의 토성으로 두르고, 중앙 북방에 다시 황성(皇城: 內城)을 쌓았다. 성 밖에는 해자를 만들었고, 네 모퉁이에는 각루의 흔적도 남아 있다. 외성에는 모두 11개의 성문이 있었다.
궁성은 북쪽 중심에 긴 네모형으로 만들고, 전체 둘레는 3,986m이다. 각루와 해자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궁성 정문은 오봉루라고 하고 축대와 주춧돌이 남아 있다. 궁성 내부는 크게 4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지며 제2궁전지 옆에 있는 팔보유리정이란 우물이 아직도 남아 있다. 또한 어화원이라는 정원 터가 보존되어 있다.
황성 남문에서 외성 남문까지 연(連)한 일직선의 주작대로(朱雀大路)를 중심으로 좌경(左京)·우경(右京)으로 갈리고, 이것을 다시 여러 조방(條坊)으로 나누었다. 황성 안에는 궁전터가 여섯이 남아 있고, 그 가운데 하나에는 오늘날의 온돌시설을 하였음이 발견되었다. 석사자(石獅子), 보상화무늬(寶相華文)의 장전(長塼), 유리·기와·석등(石燈) 등은 발해의 독자적인 문화양식을 보여준다.
외성 안에는 11개의 도로가 종횡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도시 전체가 바둑판 모양의 방(坊)을 이루었다. 방의 전체 숫자는 81개 이상으로 추정되며, 4개의 방이 한 단위를 이루어 전(田)자 모양을 하였다. 여기에는 일반 주택뿐 아니라 시장과 절도 자리잡고 있었다. 사지는 성 안팎에서 10여 기가 발견되었고, 2호 사지(南大廟)에는 발해시대의 석등(石燈)과 석불(石佛)이 전해진다. 또 상경성 안에 있는 토대자촌(土台子村)위치. 백묘자촌(白廟子村)위치 등에서 지금까지 4개의 사리함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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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안 상경성 자료번호 : ismy.d_0003_002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