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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발해 문화유산 지도

고구려 평양성(平壤城)

평양성 복원도
평양성 내성 북문
평양성 전경
평양성위치은 북한의 국보 문화유물 제1호로, 고구려시대에 처음 조성되었고 고려 초에 다시 고쳐 쌓았으며 조선시대에도 지속적으로 개보수가 이뤄졌다. 고구려가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수도를 옮긴 때는 427년이다. 이 당시의 왕궁은 평양시 대성산 기슭의 안학궁 동북아역사넷>안학궁 이었다. 안학궁 뒤편에 대성산성을 축조해 전쟁 때는 이곳으로 옮겨갔다. 그러나 이런 경우, 산성으로 피란하면 평지성은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586년(평원왕 28)에 수도를 장안성(長安成)으로 옮기는데한국사데이터베이스>평원왕, 이곳이 현재 평양 시가를 둘러싸고 있는 평양성동북아역사넷〉고구려평양성이다. 안학궁과 대성산성을 전기 평양성, 장안성을 후기 평양성이라고도 한다.

평양성은 평지성의 장점과 산성의 장점을 종합해 축성했다. 동쪽과 남쪽으로는 대동강이, 서쪽으로는 보통강이 감싸고 있어 자연 해자(垓字) 역할을 해준다. 성벽은 바깥 둘레만 16km, 안쪽 성벽까지 포함하면 23km에 이르는 거대한 도성이다. 대동문(大同門) 아래에서 서북쪽으로 만수대(萬壽臺) 끝까지는 내성이고, 그 북쪽으로 가장 높은 모란봉(牡丹峰)을 중심으로 한 북성이 있으며, 내성의 남쪽으로 대동교(大同橋)에서 안산(按山)까지 연장된 중성과 평지로 대동강과 보통강으로 둘러싸인 외성으로 되어 있다.

대부분 경사가 약간 있는 석축인데, 기초 부분과 성벽 부분 사이를 점토와 자갈로 굳게 다져놓았다. 형식상으로 보아 산성과 평지성이 결합된 것으로 평지인 나성 부분은 일정한 구획을 갖춘 계획적인 시가지를 형성하였다. 평양성은 왕궁, 산성, 서민들이 사는 곳이 모두 성안에 있는 최초의 성이었고 이러한 도성의 모습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

평양성 내부에는 고구려시대의 유적이 다수 남아 있는데, 북한 국보유적 제1호로 지정된 평양성 동북아역사넷>평양성 외에도 칠성문(七星門)위치, 을밀대(乙密臺)위치, 전금문(轉錦門), 청류정(淸流亭)위치, 연광정(練光亭)위치, 대동문위치, 보통문위치 등이 존재한다. 이 외에도 성석편(城石片)이 발견되었는데, 이를 통해 축성연대와 축성에 5부 사람들이 동원된 사실 및 공사의 담당 구간, 담당자의 이름과 관직이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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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평양성(平壤城) 자료번호 : ismy.d_0002_003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