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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발해 문화유산 지도

장군총(將軍塚)

장군총의 들여쌓기
장군총 정면
국내성에는 현재 광개토대왕비를 비롯해 장군총위치과 태왕릉, 무용총, 각저총 등 많은 유물이 보존되어 고구려의 영화를 잘 알려주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이 장군총 동북아역사넷>우산하 장군총 이다. 1905년 일본인 학자가 버려져 있는 무덤을 처음 조사해 주목을 받았다. 발견 당시에 누구의 무덤인지 몰라서 ‘장군의 무덤’이라는 뜻으로 장군총이라고 했다.
무덤의 밑넓이는 960m²이며, 무덤을 쌓은 1,100여 개의 장대석(밑을 받치는 돌)들 가운데 가장 큰 것은 길이가 5.7m, 너비가 1.12m, 두께는 1.1m나 된다. 맨 꼭대기는 둥근 돔형으로 모양을 만들고 석회와 자갈을 섞어서 마무리했다. 무덤의 내부에는 채색의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벽화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장군총의 높이는 아파트 5층 높이와 비슷한 12.4m에 달한다. 장군총을 살펴보면 정면은 서남쪽을 향하고, 네 모서리는 각기 동서남북에 맞는 방향에 자리를 잡았다. 화강암을 모나게 잘 다듬어 만든 단을 계단처럼 7층으로 쌓아올렸고, 그 꼭대기에는 접시 모양의 무덤무지를 만들어 마무리했다. 위의 단을 받쳐 주는 맨 아래의 기단은 4층으로 만들었다. 기단 아래와 주변에는 5m쯤 되는 여러 개의 토대석이 깔려 있다. 위로 올라갈수록 너비가 줄어들게 했으며 측면에서 바라보면 반원 모양을 하고 있다. 아래 단의 돌들에는 윗돌을 받쳐 주는 턱이 고여 있어서 서로 견고하게 맞물려 있다.주 003
각주 003)
이이화, 『찬란했던 700년 역사 고구려』, 언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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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총은 무덤 주변의 유물과 유적이 없어 무덤의 주인공을 알 수 없는 상태이지만 건물을 이었던 기와 조각을 찾아내어 무덤의 형식과 기와의 연대를 추적해 본 결과, 4세기와 5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또 무덤이 거대하여 임금의 무덤일 것이라는 추정 아래 북한의 학자들이나 중국의 학자들은 장군총을 장수왕의 능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아직까지 장수왕릉이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이 주장을 따르고 있다.

  • 각주 003)
    이이화, 『찬란했던 700년 역사 고구려』, 언어세상.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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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총(將軍塚) 자료번호 : ismy.d_0002_0020_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