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넷

상세검색 공유하기 모바일 메뉴 검색 공유
닫기

상세검색

닫기
기사제목
작성·발신·수신자
날짜
~
본문
사료라이브러리 열기
ID :NAHF.gd.k_0001_0050IDURL
사료라이브러리 열기
  • 글씨크게
  • 글씨작게
  • 프린트
  • 텍스트
  • 오류신고

회령형소(會寧形所)에서 대국인 2명이 무산부로 향한 연유에 대해 보고

 
  • 발신자會寧形所
  • 발송일1885년 4월 10일(음)
□ 무산 형리(刑吏) [주135]
편자주 135
닫기

지방 관청의 형방(刑房)에 소속된 아전이다.

개탁(開坼) [주136]
편자주 136
닫기

봉함되어 있는 편지나 서류를 뜯어 보는 것.


 폐부(弊府) [주137]
편자주 137
닫기

무산부를 말한다.


 안무사(按撫使) [주138]
편자주 138
닫기

지방에 변란이나 재난이 발생했을 때 왕명으로 파견되어 백성들을 동요를 막고 안주시키는 임시직이다.

께서 분부(分付) [주139]
편자주 139
닫기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내리는 명령.

하시길, “어제 유시(酉時) 경에 대국인(大國人) 2명이 폐부(弊府)에 왔다. 그 사정을 상세히 물었더니, ‘무산부(茂山府) 도전(島田) [주140]
편자주 140
닫기

무산과 인접한 청국 영역의 간도 지역을 말한다.

의 밭을 적간(摘奸)하기 위하여 파견된 관원이 오늘 이 읍에 도착한다는 공문(公文)이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그 일로 그들을 맞이하기 위하여 왔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들이 오늘 아침 귀부(貴府)를 향하여 출발한다고 하므로 파견된 관원들이 오게 되면, 어느 날, 어느 곳에 머물며, 간도의 밭을 적간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적간할 것이며, 사람과 가축의 수효 및 음식접대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상세히 회통(回通) [주141]
편자주 141
닫기

아전과 아전 사이에 왕래하는 통지문을 말한다.

할 것이며, 미리 조치를 취하여 지체하거나 하자가 없도록 하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로부터는 사통(私通) [주142]
편자주 142
닫기

공무로 여행하는 관원의 陪行 吏胥가 沿路 각 읍 公兄에게 만반의 준비를 하도록 통지하는 문서를 말하며 路文을 첨부하여 위조를 방지하기도 하였다.

하고 행하(行下) [주143]
편자주 143
닫기

상급에서 하급으로 내리는 지시 혹은 명령이다.

하라고 하셨습니다.
 을유(1885년, 고종 22) 4월 초10일 회령(會寧) [주144]
편자주 144
닫기

본래 고려(高麗)의 땅이었다. 속칭(俗稱) 오음회(吾音會)라 하는데, 호언(胡言)으로는 알목하(斡木河)이다. 회(會)자를 취(取)하여서 부(府)의 이름으로 하였다. 동맹가첩목아(童猛哥帖木兒)가 땅이 비어 있는 것을 틈타서 들어와 살았다. 1433년(세종 15)에 올적합(兀狄哈)이 맹가(猛哥)의 부자(父子)를 살해하여, 알목하(斡木河)에 추장(酋長)이 없어졌다. 1434년 봄에 드디어 석막(石幕)의 영북진(寧北鎭)을 백안수소(伯顔愁所)로 옮기고, 바로 알목하가 서쪽으로 동량 야인(東良野人)과 인접하고, 북쪽으로 적로(賊路)의 요충(要衝)에 해당하며, 또 알타리 유종(斡朶里遺種)이 살고 있다 하여, 특별히 벽성(壁城)을 설치하고서, 본진(本鎭)의 절제사로 하여금 이를 겸하여 관할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 땅이 영북(寧北)과의 거리가 매우 멀리 떨어져서, 성원(聲援)이 너무나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이해 여름에 따로 진(鎭)을 알목하에 설치하고, 풍산(豊山)·원산(圓山)·세곡(細谷)·유동(宥洞)·고랑기(高郞岐)·아산(阿山)·옛 부거[古富居]·부회환(釜回還) 등지로써 경계를 삼고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서 첨절제사(僉節制使)를 차임(差任)하였다가, 겨울에 도호부(都護府)로 승격시켜 절제사(節制使)로써 이를 진수(鎭守)하게 하고, 판관(判官)과 토관(土官)을 두었다. 사방 경계[四境]는 동남쪽으로 바다에 이르기를 1백 50리, 서쪽으로 운두성(雲頭城)에 이르기를 35리, 남쪽으로 부령(富寧) 지경에 이르기를 75리, 북쪽으로 종성(鍾城) 지경에 이르기를 35리이다. (『세종실록』, 「지리지」)

형소(刑所) 최.
 여기에, 가져온 공문을 마땅히 전보(轉報)할 필요가 있으니 등초(謄草) [주145]
편자주 145
닫기

원본 문서를 간략하게 베껴서 옮겨 적은 것을 말한다.

하여 보내는 것이 어떻겠는가?

 
주 135
지방 관청의 형방(刑房)에 소속된 아전이다.
주 136
봉함되어 있는 편지나 서류를 뜯어 보는 것.
주 137
무산부를 말한다.
주 138
지방에 변란이나 재난이 발생했을 때 왕명으로 파견되어 백성들을 동요를 막고 안주시키는 임시직이다.
주 139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내리는 명령.
주 140
무산과 인접한 청국 영역의 간도 지역을 말한다.
주 141
아전과 아전 사이에 왕래하는 통지문을 말한다.
주 142
공무로 여행하는 관원의 陪行 吏胥가 沿路 각 읍 公兄에게 만반의 준비를 하도록 통지하는 문서를 말하며 路文을 첨부하여 위조를 방지하기도 하였다.
주 143
상급에서 하급으로 내리는 지시 혹은 명령이다.
주 144
본래 고려(高麗)의 땅이었다. 속칭(俗稱) 오음회(吾音會)라 하는데, 호언(胡言)으로는 알목하(斡木河)이다. 회(會)자를 취(取)하여서 부(府)의 이름으로 하였다. 동맹가첩목아(童猛哥帖木兒)가 땅이 비어 있는 것을 틈타서 들어와 살았다. 1433년(세종 15)에 올적합(兀狄哈)이 맹가(猛哥)의 부자(父子)를 살해하여, 알목하(斡木河)에 추장(酋長)이 없어졌다. 1434년 봄에 드디어 석막(石幕)의 영북진(寧北鎭)을 백안수소(伯顔愁所)로 옮기고, 바로 알목하가 서쪽으로 동량 야인(東良野人)과 인접하고, 북쪽으로 적로(賊路)의 요충(要衝)에 해당하며, 또 알타리 유종(斡朶里遺種)이 살고 있다 하여, 특별히 벽성(壁城)을 설치하고서, 본진(本鎭)의 절제사로 하여금 이를 겸하여 관할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 땅이 영북(寧北)과의 거리가 매우 멀리 떨어져서, 성원(聲援)이 너무나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이해 여름에 따로 진(鎭)을 알목하에 설치하고, 풍산(豊山)·원산(圓山)·세곡(細谷)·유동(宥洞)·고랑기(高郞岐)·아산(阿山)·옛 부거[古富居]·부회환(釜回還) 등지로써 경계를 삼고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서 첨절제사(僉節制使)를 차임(差任)하였다가, 겨울에 도호부(都護府)로 승격시켜 절제사(節制使)로써 이를 진수(鎭守)하게 하고, 판관(判官)과 토관(土官)을 두었다. 사방 경계[四境]는 동남쪽으로 바다에 이르기를 1백 50리, 서쪽으로 운두성(雲頭城)에 이르기를 35리, 남쪽으로 부령(富寧) 지경에 이르기를 75리, 북쪽으로 종성(鍾城) 지경에 이르기를 35리이다. (『세종실록』, 「지리지」)
주 145
원본 문서를 간략하게 베껴서 옮겨 적은 것을 말한다.
 

태그 :

태그등록
이전페이지 리스트보기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