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한중역사현안 바로알기 부교재

고구려 역사를 중국사로 만들다

◆ 장군총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다.

중국 정부는 ‘만리장성 늘이기’ 이외에도 우리의 역사를 중국사로 만들려는 여러 가지 일들을 추진하였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고구려사 왜곡입니다.
장군총은 중국 지린성 지안현에 있는 고구려의 대표적인 유적입니다. 돌로 7층의 기단을 쌓아 만들었는데 그 모습이 피라미드처럼 보여 ‘동방의 피라미드’라는 불리기도 합니다.
중국 정부는 2004년에 장군총을 비롯한 초기 고구려 성 및 여러 고분들을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했습니다. 그 후 장군총을 소개하는 표지판에 ‘중국의 AAAA급 유적’이라고만 표시하고 고구려의 문화재라는 설명은 하지 않았습니다.
장군총
장군총이 유네스코세계유산임을 알려주는 표지석

◆ 고구려 유물이 많이 발견된 용담산성

주 006
각주 006) 용담산성
지린시에서 동쪽으로 7km 떨어져 있는 용담산에 위치하고 있다. 용담산은 해발 388m로 산세가 빼어나고 웅장하며, 산성은 산 능선을 따라 축조되었다. 전체적인 지형은 주변의 산세가 높고 성안은 낮아 마치 분지와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중략) 성안의 서북쪽에는 용담이라고 부르는 연못이 있어, 산성의 명칭이 여기서 유래하였다.
연못은 동서 길이 52.8m, 남북 길이 25.7m, 깊이 9.08m로 매우 크며, 다듬은 돌로 3층의 계단 형태로 축조하였다. 연못 북쪽에는 성벽까지 이어지는 배수로가 있어 물이 흘러간다. 이로써 연못과 성벽이 동시에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성안의 서남쪽에는 직경 10.6m 깊이 2∼3m의 원형의 돌로 쌓은 구덩이가 있는데, 한뢰라고 부른다. 군사물자의 저장고로 추정된다. 성안에서는 고구려 후기의 기와편과 철화살촉·철도끼·철못이 상당수 발견되었으며, 연못에서는 요·금대의 유물도 출토되어, 상당히 후대에까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출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발췌수정〉
닫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현재 중국 지린성 지린시에서 약 7km 떨어져 있는 용담산에 있는 산성입니다. 우리나라의 학자들은 이 성을 고구려가 부여를 정복하고 만든 북 부여성이라고 여깁니다.
성안에 ‘용담’이라고 부르는 큰 연못이 있어 용담산성이라고 부릅니다. 용담산성 안에서는 고구려 후기의 많은 유물들이 발굴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성은 아주 오래전부터 고구려의 산성이라고 인정받아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용담산성 앞에는 이상한 내용을 담은 부조물이 세워졌습니다. 이 부조물 아래 설명글에는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 정권이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 정권’이라고 쓴 설명글이 있는 부조물(중국 지린성 지린시 용담산성)

◆ 관광지로 개발된 성산산성

주 007
각주 007) 성산산성
중국 요령성에 있는 고구려의 산성이다. (중략) 이 성산산성은 규모나 시설로 보아 고구려 당시에도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을 것으로 보이며, 대체로 고구려의 석성(石城)으로 추정하고 있다.
석성에 관한 문헌기록으로는 당태종의 대규모 침략이 실패하고 2년 후인 647년(보장왕 6)에 당의 장군 우진달 등이 석성을 쳐서 함락하고 이어 적리성을 공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닫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중국이 2000년 랴오닝성 주변을 관광지로 개발하면서 복원한 고구려의 산성입니다. 복원하기 전까지는 원래 고구려 성벽의 모습이 잘 남아있었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복원하지 않아 성산산성의 모습은 중국식 산성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또한 그 후 중국은 성산산성에 표지석을 세웠는데, 표지석의 주요 내용은 ‘고구려 민족은 고대 중국민족(회화)의 일원이며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 정권이다’라는 것입니다.
YTN 뉴스, 동북공정으로 사라져가는 고구려 산성들

  • 각주 006)
    용담산성지린시에서 동쪽으로 7km 떨어져 있는 용담산에 위치하고 있다. 용담산은 해발 388m로 산세가 빼어나고 웅장하며, 산성은 산 능선을 따라 축조되었다. 전체적인 지형은 주변의 산세가 높고 성안은 낮아 마치 분지와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중략) 성안의 서북쪽에는 용담이라고 부르는 연못이 있어, 산성의 명칭이 여기서 유래하였다.
    연못은 동서 길이 52.8m, 남북 길이 25.7m, 깊이 9.08m로 매우 크며, 다듬은 돌로 3층의 계단 형태로 축조하였다. 연못 북쪽에는 성벽까지 이어지는 배수로가 있어 물이 흘러간다. 이로써 연못과 성벽이 동시에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성안의 서남쪽에는 직경 10.6m 깊이 2∼3m의 원형의 돌로 쌓은 구덩이가 있는데, 한뢰라고 부른다. 군사물자의 저장고로 추정된다. 성안에서는 고구려 후기의 기와편과 철화살촉·철도끼·철못이 상당수 발견되었으며, 연못에서는 요·금대의 유물도 출토되어, 상당히 후대에까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출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발췌수정〉
     바로가기
  • 각주 007)
    성산산성중국 요령성에 있는 고구려의 산성이다. (중략) 이 성산산성은 규모나 시설로 보아 고구려 당시에도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을 것으로 보이며, 대체로 고구려의 석성(石城)으로 추정하고 있다.
    석성에 관한 문헌기록으로는 당태종의 대규모 침략이 실패하고 2년 후인 647년(보장왕 6)에 당의 장군 우진달 등이 석성을 쳐서 함락하고 이어 적리성을 공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바로가기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고구려 역사를 중국사로 만들다 자료번호 : edkc.d_0001_001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