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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장사회의 형성단계

1. 군장사회의 형성단계

요하 상류와 대릉하 상류에 분포하면서 중국연구자들이 문명 단계에 진입하였다고 하는 홍산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치는 기원전 3천년 이전에 속한다. 홍산문화는 적봉 홍산후(紅山後)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유적의 이름을 딴 것으로, 이 문화를 대표하는 것은 요령성 건평 우하량(牛河梁)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치 유적이다. 동 유적의 16개지점 중 제1지점에서는 목조건축물 신전, 13지점에서는 계단식 신전, 제2, 3, 5, 16지점에서는 다수의 석관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석곽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토광묘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와 제사시설이 함께하는 적석총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무덤이 발견되었다.
제2지점의 경우 동서 길이 150m, 남북 폭 80m의 범위 내에서, 총 6개 군으로 구분되는 무덤과 제사시설이 동서로 길게 배치되어 있다. 한가운데에 위치한 3호 원형제단을 중심으로 그 좌우 동서에 2개, 북쪽으로 1개의 적석묘역을 갖춘 무덤군이 분포한다.
3호 제단 바로 옆 중앙에 위치한 2호 적석총의 중심대묘는 길이 18.7m, 폭 15.8m의 방형 적석묘역 한 가운데에 토광을 파고 석관을 시설한 것이다. 도굴되어 부장유물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다른 지점의 예로 보아 원래 다량의 옥기가 부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1호 적석총에서는 여러 열을 이루는 총 27기의 무덤이 조사되었다. 그중 가장 부장품이 많은 예는 길이 2.1m, 폭 0.48m의 21호 석관묘로 통형옥(筒形玉), 수면옥(獸面玉), 구운옥(勾雲玉), 구형옥(龜形玉), 종형옥(琮形玉) 각 1점을 비롯하여 옥벽(玉璧), 옥환(玉環), 귀고리옥, 팔찌옥 등 다수가 포함된 총 20여점의 옥기가 부장되어 있었다.
3지점에서도 직경 17m의 적석총 묘역 안에 다수의 묘가 조성되어 있었다. 중심대묘인 7호묘에는 남성 1인이 안치되어 있었는데 통형옥, 팔찌옥, 구슬옥 총 3점의 옥기가 부장되어 있었다. 5지점의 중심대묘는 직경 25m의 적석묘역이 있고 한가운데에 이단토광을 파고 석관을 안치한 것이다. 피장자는 노년남성으로, 구운옥은 오른쪽 가슴, 통형옥은 머리 밑, 팔찌옥은 오른쪽 팔뚝, 벽옥은 머리 양쪽, 거북옥은 양손에 총 7점이 부장되어 있었다. 16지점에서는 13기의 묘가 확인되었는데 중심대묘는 4호묘로서 석관을 시설하였다. 피장자는 45~50세의 남성으로서, 피장자의 머리, 가슴, 허리 등에 봉황옥 1점, 통형옥 1점, 옥인(玉人) 1점, 팔찌옥 1점, 환옥 2점 등이 놓여 있었다(그림 11).
그림 11 우하량 무덤 부장 옥기
이처럼 정교한 옥기를 부장한 무덤 자료를 근거로 중국 연구자들은 예제(禮制)에 입각한 엄격한 등급사회에 진입하였다고 주장하지만, 다음 기원전 2천년기 이 지역에 등장한 청동기시대의 하가점하층문화(夏家店下層文化)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의 예와 비교할 때, 군장사회 중에서도 더욱 초보적인 단계의 것으로 판단된다.
기원전 2천년기에 등장하는 하가점위치하층문화 또한 요하상류와 대릉하 상류를 중심으로 한다. 이들 지역집단의 사회적 모습은 요하 상류의 영금하(英金河)위치 등지에서 지표조사를 통해 확인된 석성과 토성의 마을유적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마을의 공간적 규모와 성곽시설의 구조를 통해 중심마을과 연결된 다수의 주변마을의 관계가 확인되었으며, 이러한 성곽 마을 유적의 네트워크를 중국연구자들은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는 후대의 장성과 같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하가점하층문화의 상위급 마을로서, 토성으로 둘러싸인 마을 외곽에서 대규모 공동묘지가 발굴된 내몽고 오한기(熬漢旗) 대전자(大甸子)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치 유적이 있는데, 남북 150m, 동서 70m의 범위에서 총 804기의 무덤이 조사되었다. 가장 많은 유물을 부장한 905호 무덤은 목곽을 갖춘 대형묘로서 55세 전후의 남성이 안치되었는데, 관(罐) 5점, 력(鬲) 3점, 정(鼎) 1점, 장동관(長胴罐) 1점, 작(爵) 1점, 규(鬹) 1점 등 토기 12점이 부장되어 있다.
726호묘의 경우 55세의 남성의 인골이 묻혔는데, 관(罐) 3점, 력 3점, 호 1점, 정(鼎) 1점, 작(爵) 1점, 규(鬹) 1점 등 11점의 토기가 부장되어 있다. 612호묘에서는 45세 이상의 성인 남성 인골이 확인되었는데, 관 4점, 력 4점, 규 1점, 작 1점 등의 토기 10점이 부장되고, 충전토에는 돼지와 개 뼈가 매납되어 있었다(그림 12).
그림 12 대전자 무덤(905호)와 부장토기 셋트(726호묘)
요동지역에는 기원전 2천년기말에 요북지역을 중심으로 쌍방문화에 속하는 석관묘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대석개묘(大石蓋墓)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지석묘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의 무덤유적, 요동반도 남단에는 상마석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치문화(上馬石文化)에 속하는 적석묘 유적이 조사된 바 있다(그림 13).
그림 13 요동지역의 지석묘
대석개묘는 쌍방 6호묘에서 보듯이 볼 탁자식 지석묘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명지대 서양고서DB탁자식 지석묘보다는 청동기가 부장된 사례가 많지만, 단검, 화살촉 등의 무기와 도끼, 끌 정도의 공구로서 빈약하여 요서지역에 비할 바가 못된다.
탁자식 지석묘는 높이 1m의 지석, 길이 3m 이내의 상석을 갖춘 예가 대부분이나, 개주 석붕산(蓋州 石棚山)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치 예에서 본 것처럼 높이 3m의 지석, 길이 7~8m의 상석을 갖춘 예도 있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1기씩 조성된 예가 많으며, 부장유물로 토기와 생활도구 몇점이 있을 뿐 청동기는 드문편이다.
이와 같은 탁자식 지석묘는 한반도 서북부지역에 오히려 더 많은 숫자가 성행할 뿐만 아니라, 요동지역과 동일한 형식의 사례가 적지 않다. 요동의 개주 석붕산의 지석묘와 입지여건은 물론 형식, 그리고 규모 등에서 유사한 황해 관산리 탁자식 지석묘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관산리 탁자식 지석묘위치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서북한지역에서는 요동과 구분되는 신흥동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신흥동위치문화(新興洞文化)가 형성되어 있다. 각기 다른 양 지역의 집단이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서 같은 형식의 돌무덤을 상호 경쟁적으로 모방하면서 축조하는 초기 군장사회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지석묘는 한반도 남부로 가면 그 형식이 변형되면서 크게 번성한다. 대체로 송국리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문화재청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문화재청위치문화에 속하는 기원전 1천년기 전중반에 지석이 낮은 괴석으로 되어 있는 바둑판식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우리역사넷바둑판식바둑판식, 아예 지상에 지석이 없는 무지석식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무지석식무지석식으로서 탁자식과 달리 지하에 매장시설을 갖춘 사례가 크게 성행하는 사실이 확인된다. 그 상석이 수십여 톤이 넘는 대형의 사례가 상당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남 창원 덕천리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치나 마산 진동리문화재청문화재청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치의 예처럼 1기의 지석묘 묘역이 수십 m에 이른 것이 있다. 또한 최근에 조사된 경남 김해 율하리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문화재청위치의 경우 수 m 되는 깊이의 토광에, 7~8 중의 개석을 덮은 다중개석의 지석묘가 확인되어, 피장자가 상당수의 인력을 동원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군장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부장되는 유물은 석검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석검과 석촉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이 대부분이고, 간혹 동검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동검, 동모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이어서 다음에 볼 비슷한 시기의 요서지역의 소흑석구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치, 남산근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치, 십이대영자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북한문화재자료관위치나 요동지역의 정가와자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치 무덤의 사례와 차이가 나는 바, 그 피장자는 대체로 초기 군장의 모습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1천년기에 요동반도 남단의 상마석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치문화에 속하는 여순 강상(崗上)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무덤은 적석묘역을 갖춘 군집묘이다. 동서 28m, 남북 20m의 범위 내에 16개의 석관묘와 토광묘가 배치되어 있다. 7호 석관묘를 중심으로 하여 주변에 일정한 간격으로 무덤이 배치되어 있는데, 한 무덤 안에 다수의 인골이 화장하여 안치되어 있었다. 부장유물로는 비파형동검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키백과비파형동검비파형동검을 비롯하여, 공구, 차마구, 장식품의 청동기가 부장되어 있는데, 그 기종과 수량은 다음에 소개하는 같은 시기의 요서지역 청동부장묘보다는 적은 편이어서, 이 역시 초기군장 단계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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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장사회의 형성단계 자료번호 : edeah.d_0001_0030_005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