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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성문

 
 

5) 성문

 

대성산성에는 성의 정문인 남문 외에 작은 문들이 19개 있었다. 발굴한 성문은 남문과 소문봉의 문 자리다. 대성산성의 성문은 지형상으로 보아 모두 그곳을 통하여 나들기 좋은 곳에 있으며 특히 국사봉에 있는 서문은 북쪽으로 청룡산줄기와 연결되는 곳에 있어 북쪽의 성들과 연계를 가지는 중요한 통로이다.
남문터는 소문봉과 주작봉에서 내려오는 성벽이 골짜기에서 마주치는 평지 중심부에 있다. 남문 부근에는 성벽이 2중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남문도 바깥 성벽의 남문과 안 성벽의 남문 2개가 있었을 것이다. 바깥 성벽은 흔적이 매우 약하게 남아 있어 두 남문 중에서 안 성벽의 남문터를 발굴하였다.〈사진 334~337〉 남문은 길이 20m, 너비 13.8m 되는 장방형의 돌축대를 성벽에 붙여서 밖으로 내쌓고 그 위에 지었다. 이 돌축대는 윗부분이 이미 다 없어졌기 때문에 그 기초를 확인하여 구조를 밝
혀냈다. 성문 돌축대의 기초돌은 지표에서 175cm 깊이에 놓여 있으며 여기에 현재 돌축대가 4단 남아 있다. 기초축대는 사암을 큼직큼직하게 다듬어서 수직으로 쌓아올렸으며 맨 밑의 돌은 10cm 정도 앞으로 내쌓았다.〈사진 338, 339〉 돌축대의 양쪽 측면도 돌을 쌓는 방법은 같은데 그중 남쪽 측면은 특히 큰 돌을 썼다. 큰 돌은 그 길이가 2m를 넘는 것도 있으며 작은 것도 보통 1m 정도는 된다. 현재 이 축대는 끝부분이 제일 적게 남아 있고 성벽 쪽으로 가면서 점차 그 보존상태가 좋아서 성벽과 맞닿는 부분에 가서는 끝부분보다 225cm나 더 높아졌다. 그런데 성벽과 맞닿는 부분의 돌축대의 높이는 140cm이므로 기초 지면을 경사지게 조성하고 쌓아올린 것임을 알 수 있다. 돌축대의 끝에서 630cm 쯤 안으로 들어가서부터는 남아 있는 돌의 높이도 한 단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돌의 표면을 고르게 쪼아서 그 위에 또 돌을 쌓았던 흔적이 있다. 또 여기서부터 성벽 쪽으로 1.3m 구간은 고구려의 붉은 기와 조각이 많이 나왔으며 그중에는 암키와막새만 하여도 10여 종이나 된다. 이런 사실은 이 돌축대(크기 1,380×1,330cm) 위에 성문루가 있었다는 것과 이 문루에는 붉은 기와를 이었던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이 문루가 서 있던 자리에는 원래 쌓았던 돌들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는데 가장 높이 남아 있는 곳은 축대 끝의 기초부분에서 240cm이다. 그러므로 남문은 축대를 일정한 높이로 쌓아올린 위에 문을 짓고 그 위에 문루를 세웠던 것이다. 이 돌축대 끝부분의 지층은 현 지표로부터 1m 깊이까지는 식물이 썩은 성분이 많이 섞인 흙이며 그 밑으로 50cm 깊이는 자갈돌층과 모래층이며 그 밑의 25cm는 황색 진흙에 돌이 섞인 다진 지층이다. 이러한 지층상태로 보아 이 돌축대 남쪽은 현 지표에서 1.5m 깊이까지 일정한 시기에 물이 차 있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돌축대가 성벽과 맞닿는 곳의 지층은 이와는 달리 현 지표에서 3m 깊이까지는 성벽이 무너져 쌓인 층이고 그 밑 24cm는 붉은 기와층이며 그 밑 25cm는 황토층이고 다음 25cm는 자갈돌과 모래가 섞인 층이고 다음 35cm는 검은 흙층이다. 검은 흙층 밑으로는 돌과 썩은 섬유질이 많이 섞인 지층이 계속되는데 이 검은 흙층이 성문이 있던 당시의 지표였던 것이다. 이 남문터 양쪽으로 230m 구간은 530cm 두께의 성벽이 직선으로 뻗어 있었으며 그 양끝부터는 산비탈을 따라 성벽이 구부러지면서 주작봉으로 올라가고 있다.
이 밖에 대성산의 성문은 대부분 산 능선에 있는데 소문봉의 성문도 그런 성문의 하나다. 이 성문은 성의 정문은 아니고 또 일상적으로 열어놓는 성문도 아니기 때문에 규모가 작다. 그러나 이런 성문도 성 방어에서는 매우 불리하기 때문에 성문 근처의 성벽의 구조는 매우 복잡하게 만들었다. 성문이 있는 곳의 성벽은 양쪽에서 오는 성벽의 19m 구간이 2중으로 되어 있으며 두 성벽의 두께는 10.5m이다. 두 성벽 사이는 2.7m이고 안쪽 성벽 끝부분에 성문을 만들었던 자리가 남아 있다. 성문 자리에는 바닥에 돌을 깔았던 시설이 남아 있는데 그 길이는 5m, 너비는 2.7m이다. 이 성문은 평시에는 막아두었다가 전시에만 이용하였던 암문인 것 같다.〈도면 59〉

〔도면 59〕 소문봉 문터 실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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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면 59〕 소문봉 문터 실측도


성문이 있는 곳의 바깥쪽 성벽은 성문에서 12.5m 더 나와 있는데 이것은 성문 방어에 이용하기 위하여 내쌓은 것이다. 또 성문 앞 35m 거리에는 치가 있어 성문에 접근하는 적을 공격하는 데 유리하게 조성되었다.
대성산성의 성벽이 무너진 선을 따라가보면 이렇게 성벽이 2중으로 되어 있는 것이 여러 곳에 있는데 그런 곳은 다 이런 형식의 성문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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