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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스탄의 고대 문화

4. 키르기스스탄의 고대 문화

키르기스스탄 문화사는 아득히 먼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까지 키르기스스탄 지역에서는 여러 단계 구석기 유적지 약 20개 정도가 발견되었다(호드좌 바키르간 사이, 빨만, 우츠 코르간, 온 아르차, 코드좌 카이르 등).
대부분의 유적지에서 나온 고고학적 자료들은 성질이 같은 자갈로 만들어진 물건들(석기도끼, 절단기, 돌 깎는 기구 등)로서, 연구가들은 확실한 층위학적 기준 없이 이들을 구석기 전기 중기 것으로 구분하고 있다(코노플랴, 1959 ; 라노프, 1968). 셀운구르 동굴 복합체와 스이랴-카프츠이가이 출구들에 있는 작업장은 예외로 둔다. 셀운구르 동굴 유물들의 연대적 해석에 관한 문제는 미해결인 채로 남아 있다. U. I. 이슬라모프에 의하면, 부서지기 쉬운 동굴로 퇴적물에서 발견된 습득물은 아슐리안 형태[бифасы, 지브(뱃머리의 큰 돛 앞에 다는 작은 돛) лимасы 등]를 특징으로 하고 있고, 초기 홍적기 시기로 연대를 정해야 한다(이슬라모프, 크라흐말, 1995). V. A. 라노프도 역시 아슐리안 공작을 초기 홍적기 시기의 것으로 보았으나, 타지키스탄의 황토 층위에서 발견되는 구석기 유물들과 비교하여 이를 카라타우의 말기 자갈 문화로 구분하였다.
N. K. 아니슈트킨과 L. B. 비쉬냐츠스키는 유적지의 공작을 이른 구석기시대 것으로 보았으며, 이것은 아슐리안과는 관련이 없고 자갈 문화 범주에 포함된다고 여겼다(아니슈트킨, 비쉬냐츠스키, 2001-2001 ; 비쉬냐츠스키, 1996). 일련의 연구자들은 지질연대학적, 동물상학적, 화분포자학적 자료에 근거하여 셀운구르를 중기 빙하시대의 유적지로 간주한다(벨리츠코 외, 1990).
셀운구르 동굴의 유물들에서는 전형적인 자갈돌석기 전통과 함께 석기의 1차 가공에서 아슐리안 전통의 특성들이 결합하여 나타난다.
스이랴-카프츠이가이 출구들에 위치한 작업장은 1956년 P. T 코노프레이에 의해 거대한 북쪽 사면 알라이 산맥의 북쪽에 위치한 아르파르이크 산의 단기 계곡에서 발견되었으며, 1958~1959년 A. P. 오클라드니코프의 지도 아래 조사를 하였다. 그들은 전통적인 르발루아 전통의 돌 가공기법이 명확하게 나타나는 무스테리안기 유적물로 보았다(오클라드니코프 외, 1964).
그러나 우리 견해로는 수집품 중에 몇몇 각기둥과 모양이 유사한 주먹도끼, 끝이 뾰족한 주먹도끼와 정교하게 다듬어진 긁개들이 존재한다고 해서 이 유물들을 중기와 후기 구석기 수공품으로 명확하게 구분하기에는 근거가 불충분하다고 본다. 오히려 후기 구석기 유물 수집품 중에서는 유물 혼용이 거의 나타나지 않으며, 중기 구석기 말과 후기 구석기 초의 카프츠이가이 석기공작이 과도기적 특성을 지니고 있었음을 증명한다(차르그이노프, 2003).
아이르바즈 1-5 유적지에서 발견된 석기 가공물은 아마도 코조-카이으이르 강의 하수 때문에 강 바닥보다 더 높은 곳에 위치한 카프츠이가이 작업장에서 옮겨졌을 것이다. 범람으로 형성된 충적단구에 분포된 가공물, 단일 원료채굴장, 기술·형태상의 유사성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타르그이노프, 2007).
유타쉬-사이 유적지 출토 석기들(도면)
V. A. 라노프가 조사한 토소르 유적지는 2001년 러시아-키르기스스탄이 공동으로 참여한 국제 조사단이 고고학적 발굴을 실시했다. V. A. 라노프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토소르 유적지의 석기 공작은 과도기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확신하였다(제레뱐코 외, 2001 ; 코스첸코, 라노프, 마카로바, 1969 ; 라노프, 네스메야노프, 1973 ; 유누살리예프 1979).
토소르 유적지에서 수집한 세 개의 유물을 분석하여 이 유적은 원료 채굴에 사용된 임시 작업장이고, 후기 구석기시대 전기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 유적지의 고고학적 자료는 토소르 작업장 발굴과정에서 습득한 수집품이기도 하므로, 이들을 하나의 유물복합체로 볼 수 있다(아브드이카노바 외, 2002).
키르기스스탄에서 발견된 독특한 구석기시대 자료들은 2002년 카프츠이가이 작업장이 위치한 지역의 정밀 조사과정에서 발견한 것으로, 공개적으로 성층조사를 실시한 유타쉬-사이의 유적을 조사하던 중에 획득하였다(제레뱐코 외, 2001 ; 제레뱐코 외, 2003). 유적은 테라스형의 오목한 곳에 위치해 있으며, 유타쉬 사이 바닥에서부터 18~20m 위에 위치해 있다(북위 40º07'25,9", 동경 71º57'43,5"이며, 해발 1,394m이다). 사전 조사와 그에 따른 면적 50m2 지역을 발굴함으로써 이 유적지는 구석기시대의 여러 층위가 있는 유적이며, 이 유적에서 발견된 고고학적 유물들은 훼손되지 않은 상태로 놓여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조사 연구를 수행한 결과, 24개 암석층으로 이루어진 3.55m 두께의 부서지기 쉬운 퇴적층을 파헤쳤다. 이 부서지기 쉬운 퇴적층 속에서 발견한 고고학적인 유물들은 암석학적 세부 분류와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었으며, 연대적으로 명확하게 구분되는 유물층에도 맞게 위치해 있었다. 현재는 무 문화층으로 나누어진 석기 가공 유물층 30개로 분류하고 있다.
석기 가공 유물은 총 3,628만 1천 개다. 고고학적 유물들의 층위 특성을 분석함으로써 우리는 거주층을 조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발굴 과정에서 행한 평면도 관찰을 통해 대부분의 층위들에서 발견된 고고학적 유물들은 훼손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하고 있고, 이는 대부분의 층위들에는 하나의 블록의 조립(구성) 요소로 존재하는, 즉 하나의 틀에서 본을 뜬(찍어낸) 수공품들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다른 증거물로는 많은 수공품들이 기계적인 간섭의 흔적이 없는 얇고 가는 끝을 지니고 있는 보존 상태를 들 수 있다. 이 유적지의 석기 공작을 분석하면 이 공작이 르발루아 전통의 석기 가공기법이 미미하게 남아있는 중기 구석기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게다가 위 층위에서 아래 층위로 가면서 공작의 기술적, 유형적 특성이 약간 변화되었음을 살펴볼 수 있다.
전기 구석기부터 후기 구석기에 걸쳐 모든 문화가 나타나는 유적복합체에서는 석핵수공품을 만들 때 매우 단순하고 상황에 따른 효과적인 방법을 취하였다. 전체적으로 유타쉬-사이 정주지의 층위들에서 나타나는 공작들을 특정지으면서, 정주지의 전 층위에서 단일 유형의 도구들이 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전반적으로 이는 매우 세부적으로 전문화가 된 것으로, 그다지 다양하지 않은 다섯 개의 기본적인 성분, 즉 깎개, 긁개, 가장자리가 물결 모양인 도구, 바늘 모양의 도구, 완성된 톱의 합성체이다.
아마도 여기에서 무스테리안 기간에 여러 단계로 발전하는 공작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동시에 하위 층위에서 발견된 고고학적 유물들은 무스테르 시대 이전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명확하게 표현된 르발루아 기법으로 제작된 이파리형 도구와 자르는 도구가 함께 출현했다는 점이 이를 가리킨다(차르그이노프 2007 ; 2007a ; 2010).
이처럼 현존하는 자료들을 통해 선사인들이 최초로 키르기스스탄으로 이주한 것은 구석기 초기 단계였으며, 이는 자갈 전통방식으로 1차, 2차 석기를 가공하는 민족들과 관계가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 다음 단계에는 지역성을 지닌 좀 더 오래된 자갈전통 방식에 아슐리안 전통이 유입되었는데, 이는 셀운구르 동굴의 유물에서 보인다. 중기 구석기 공작의 형성과 발전은 아마도 토착 전통의 석기 가공기법, 무엇보다도 후기 아슐리안 가공비법의 현저한 영향 하에서 르발루아 기법이 좀 더 발전하여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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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스탄의 고대 문화 자료번호 : ag.d_0004_0010_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