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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담은 그림 - 안악 3호분 벽화" 북한의 황해남도 안악군에 위치한 안악3호분은 고국원왕 때인 서기 357년에 만들어졌다.
현무암과 석회암의 큰 판석으로 짜여진 석실봉토벽화고분으로, 조사 당시 고분은 남북 길이 33m, 동서길이 30m의 방대형분이었고 지표에서 고분 정상부까지의 높이는 약 6m 정도였으나 현재는 그보다 더 큰 규모로 복원되어 있다.
고분의 내부는 널길과 앞방, 좌우 곁방, 널방 그리고 널방을 ‘ㄱ’자 모양으로 돌아가는 회랑으로 구성되어 있다. 널길과 앞방 그리고 회랑은 통로로 연결된 독립 공간이 아니라 기둥과 사이 벽으로 구성되어 전체 평면은 마치 두 칸처럼 보인다.
천장과 각 방의 벽면은 인물과 풍속을 주제로 하는 다양한 벽화들로 채워졌는데, 세밀하게 묘사된 무덤주인공 부부의 모습과 웅장하고 생동감있게 표현된 행렬도가 단연 돋보인다.
그 외에도 방앗간, 우물, 부엌, 고깃간, 차고, 외양간, 마구간 등의 벽화는 4세기 중반 고구려인의 생활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무덤의 널길 동서 양쪽 벽에는 의장대열이 그려져 있다. 이처럼 무덤입구의 널길에 의장대를 그려 넣은 것은 안악3호분에만 보이는 특징이다.
앞방 남벽의 동서 양 벽에는 화개, 각종 깃발, 절(節), 도끼를 든 의장대 인물들이 예의를 갖춘 듯 허리를 약간 굽힌 채 입구를 향해 있으며, 뿔피리와 북 등을 연주하는 악대도 모두 입구를 향하고 있다.
의장대열 좌측 아랫단에는 부월수의 그림이 있다. 도끼를 들고 긴 저고리에 바지를 입었으며 허리에는 띠를 매고 있다.

널길과 연결된 앞방은 옆으로 긴 장방형이며 천장은 평행삼각고임이다. 이 앞방의 동, 서 양측으로 곁방이 있다.
서쪽 곁방 입구 양쪽 벽에는 왕의 호위무관인 장하독이 서로 마주보는 자세로 그려져 있다. 앞부분이 뾰족하게 솟은 ‘책’이라는 머리쓰개를 쓰고 있는 이 장하독 위로 묵서가 있다. 좌측의(남쪽의) 장하독 위에 있는 묵서는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 있지만, 우측의(북쪽의) 장하독 위에 있는 묵서는 일부 흔적만 있을 뿐,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
좌측 장하독 묵서에는 영화 13년 관직에 있었던 ‘동수’라는 인물이 69세의 나이로 사망한 사실이 기록되어있다.
안악3호분의 주인공에 대해 학계에서는 고국원왕으로 보는 입장과 동수로 보는 입장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좀 더 구체적이고 치밀한 논의가 필요하다.
서쪽 곁방은 남북 방향으로 긴 장방형 모양이다.
무덤 주인공의 초상은 서쪽 곁방의 정면 벽에 그려져 있다. 평상 위에서 정좌한 모습의 주인공은 검은 내관 위에 하얀 덧관을 쓰고 있는데 이것은 결이 아주 고운 비단 종류인 ‘라’를 이용해 만든 관이다.
무덤 주인공이 붉은 색의 화려한 비단 옷을 입고, 좌우에 관리들을 거느리고 정사를 보는 모습이 아주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주인공 부인의 초상은 주인공의 바로 옆인 남쪽 벽면에 그려져 있다. 주인공을 향해 몸을 살짝 틀고 앉아 있는 자세로, 풍만한 얼굴에 살짝 미소를 머금은 표정으로 묘사된 부인은 화려한 머리 장식에 꽃무늬 비단옷으로 치장한 채로 시녀들에게 시중을 받고 있다.
동벽에 위치한 입구의 왼편에는 문지기 한 사람이 두 손을 공손히 겹친 채 입구를 향해 서있는 모습도 보인다.
벽 바로 위의 들보에는 화려한 구름무늬로 장식되어 있고 삼각고임 천장의 중앙에는 붉은 연꽃이 피어 있다.
서쪽 곁방을 나와 건너편에 위치한 동쪽 곁방 입구 오른쪽 벽에는 고구려 대중들에게 널리 퍼졌던 권법인 수박희 장면과 도끼를 든 부월수(斧鉞手)의 대열이 상하 두 단으로 나뉘어 그려져 있다.
동쪽 곁방도 남북 방향이 긴 장방형 모양으로 서쪽 곁방보다 약간 작다.
동쪽 곁방 내부의 벽면은 고구려의 주거 문화를 볼 수 있는 다채로운 벽화들로 장식되어 있다. 곡식을 손질하고 요리를 하는 모습에서부터 정교하게 표현된 수레와 가축 그림 등은 무덤 주인공이 실제 살았던 집인 듯 매우 사실적이다.
우선 서벽의 오른편에는 디딜방아의 유래를 가늠할 수 있는 방앗간이 그려져 있는데, 방아를 찧고 있는 여인과 키질을 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흥미롭다.
오른편으로 돌아 북벽엔 지레 원리를 이용한 용두레 우물이 그려져 있으며 우물 주변으로 다양한 모양의 물항아리와 구유를 볼 수 있다.
동벽의 부엌에는 하녀로 보이는 여성이 큰 시루 앞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다. 그릇의 크기로 미루어 얼마나 많은 식구가 함께 살고 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아궁이 앞으로는 또 다른 하녀가 정성스럽게 불씨를 보고 있고, 옆에서는 한 여자가 소반 위의 접시 같은 것을 정리하고 있다.
부엌 옆으로 푸줏간과 차고가 있다. 푸줏간에는 노루, 돼지 등 짐승들이 고리에 매달려 있고, 수레를 보관하는 차고에는 두 대의 수레가 있는데 이 수레들은 소가 끄는 수레로 ‘약수리 벽화 무덤의 행렬도’에서도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남벽에 그려진 외양간에는 검정소, 누렁소, 얼룩소 등 세 마리의 소가 있는데 뿔이 모두 빨간색이고 코뚜레를 달았다.
서벽의 왼편에는 마구간이 그려져 있는데 말들의 털빛이 각각 다르고, 말 갈기 한 올 한 올까지 묘사할 정도로 세밀한 표현이 돋보인다.
주거공간을 이렇게 자세하고 정성스럽게 묘사한데는 생전의 풍요로웠던 생활이 내세에도 재현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앞방과 널방 사이에는 4개의 기둥을 세워 구획을 나눴다.
네 개의 기둥으로 앞방과 구분되는 널방의 동벽에는 세 사람의 악대와 그 옆에서 다리를 꼰 채로 춤을 추고 있는 서역계 무희의 모습이 보이고 있어 당시 고구려의 활발한 대외 문화 교류를 알 수 있다.
널방은 방형평면이며 천장은 앞방과 마찬가지로 3단의 평행고임 위에 2단의 삼각고임을 얹은 평행삼각고임 구조이다.
회랑은 널방의 동벽에서부터 북벽까지 ‘ㄱ’자로 둘러싸여 있다. 이 회랑의 남쪽 벽면에는 고상식 건물이 그려져 있으며, 동쪽 벽면에는 250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행렬도’가 그려져 있다.
소가 끄는 수레를 탄 주인공을 중심으로 앞쪽에는 악대가 노래와 연주, 춤을 추며 나아가고 수레 뒤쪽으로는 의장 기수, 시녀, 말을 탄 문관 등이 뒤따르고 있다. 이러한 웅장한 행렬은 당시 무덤 주인공의 지위가 매우 높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벽화에서 보이는 것처럼 고구려는 폭넓은 대외관계를 바탕으로 동서의 여러 문화를 받아들여 이후 자신들만의 고유한 문화로 승화시키며 발전해 갔다.
안악3호분 벽화를 통해 4세기 중반 고구려 회화, 서예 문화의 발전, 아울러 다양한 생활모습, 정치사적 일면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안악3호분은 고구려 문화사 연구에서 매우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벽화를 통해 전해지는 고구려인의 다양한 풍속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안악3호분은 고구려인의 삶이 담겨진 위대한 예술작품인 동시에 고구려의 생활상을 연구할 수 있는 우리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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