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사마르칸드, 문화의 교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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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아시아에서 제일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사마르칸드. 기원전 5세기경 제라프샨강 유역에 살던 소그드인들에 의해 건설된 이 도시는, 실크로드의 중심에 위치해 예로부터 '동방의 에덴', '중앙아시아의 진주'라 불릴 정도로 번영한 국제상업도시였다.

    이곳이 실크로드 무역의 중심지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증명해줄 유적이 1965년 사마르칸드의 동북쪽 언덕에 있는 아프로시압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그 유적은 바로 7세기 중엽, 소그드 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아프로시압 궁전 벽화다. 삼십여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는 거대한 궁전 터 중심부에서 발견된 이 벽화는 소그드 시대의 번영했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세계 학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현재 아프로시압 도성은 황량한 폐허가 되었지만, 벽화에는 사마르칸드, 부하라, 판지켄트 지역을 아울렀던 도시연합국가 소그디아나의 지배자인 바르후만(Varkhuman)왕을 알현중인 많은 나라의 사절들이 등장하며, 7세기 당시 이 지역이 국제무대에서 주요한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했다.


  • 아프로시압 궁전 벽화에 남은 각국의 사절과 고대 한국인

  • 이 벽화는 대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으며 어떤 목적으로 그려진 것일까? 천 삼백여년이 지나 많은 부분이 훼손되었지만, 아직 벽화는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말해주고 있다.
    정면의 서벽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 인물의 흰색 옷자락에 고대 소그드어로 쓰여진 명문이 남아있다.

    우나시 가문의 후예 바르후만 왕이 다가왔을 때, 그는 말했다. "저는 Pukar-zate라 불리는 차가니안의 Dapirpat(수석서기)입니다. 저는 저의 왕 Turan-tash의 명을 받아 당신께 경의를 표하고, 당신의 영광을 기리기 위하여 왔습니다. 그러니 왕이시여, 저에 대한 의심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저는 사마르칸드 신들을 잘 알고 있으며, 또한 사마르칸드 문자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당신을 해할 의사가 없습니다. 왕이시여, 위대한 삶을 누리길...", 말을 다 마친후, 우나쉬 가문의 후예 바르후만 왕은 그를 보냈고, 이어서 차치(Chach)의 Dapirpat(수석서기)가 연설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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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문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서벽의 그림은 바르후만 왕을 알현하고 있는 각국의 사절들을 나타낸 것으로 추정된다. 좌측부터 사절들을 차례로 살펴보면 이들은 명문 내용의 주인공인 차가니안(Chaganian)인들과, 명문 내용 후반에 등장하는 차치 인들, 누에고치와 비단을 선물하는 당인들, 티베트와 같은 산간 지역에서 온 사절들로 보이며, 제일 우측에 소매 안으로 손을 마주잡고 서 있는 두 명의 인물들이 바로 고대 한국에서 온 사절로 추정된다.

    고구려 벽화와 여러 문헌기록들에 따르면 고구려인들은 새깃털로 장식한 조우관을 썼다. 또한 이들은 소매 안으로 손을 맞잡는 삽수라는 습관을 갖고 있었다. 중국의 기록에서는 백제나 신라 역시 고구려와 그 복식이 유사했다고 적고 있다. 손잡이에 둥근 고리를 단 환두대도 역시 삼국시대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서벽의 두 인물은 이러한 고대 한국인의 외형적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들이 고대 한국인이 맞다면, 약 5000킬로미터나 떨어진 사마르칸드까지 와야 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정확한 답은 얻을 수 없지만, 한반도의 국가들이 당과 싸우거나 연합했던 7세기의 복잡한 국제 정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절 그룹들의 주변에는 돌궐인들이 서있거나 앉아 있으며, 벽화 좌우에는 돌궐인들이 놓은 것으로 보이는 방패와 깃대 같은 것들이 서있는데, 유목민의 특징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 지역에 대한 돌궐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소그드인들의 정신 세계와 의례 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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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벽에는 벽 전체에 걸쳐 화려한 행렬이 나타나고 있다. 제일 앞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건물의 하부와 몇몇 사람이 그려져 있고, 그곳을 향하는 행렬 선두에는 화려하게 치장된 코끼리를 탄 인물이 다가가고 있다. 그 바로 뒤에는 말을 탄 세 인물이 수행하듯이 따라붙고 있으며, 이어서 낙타를 탄 두 인물이 각자 손에 의례용으로 보이는 막대를 들고 나아가고 있다. 그들의 뒤에는 거위 네마리와, 아무도 타고 있지 않은 말, 그리고 이들을 몰고 있는 마스크를 쓴 인물이 보이고 있다.

    남벽의 오른쪽에는 화려하게 치장된 말을 타고 있는 인물의 하반신이 아주 거대하게 그려져 있는데, 행렬의 주인공인 바르후만 왕을 나타낸 것으로 추정된다. 그를 수행하는 인물도 뒤에 보인다.

    이 행렬은 학자들에 따라 조상묘 참배 행렬로 보기도 하며 결혼 행렬로 보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남벽에서 보이는 종교적 요소가 대체로 조로아스터교의 특징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 북벽 전체를 할애하여 묘사한 당나라 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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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벽에는 당나라를 주제로 한 그림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좌측에 보이는 배 위에는 당의 황후로 추정되는 여성을 중심으로 10여명의 시녀와 사공이 타고 있다. 그 아래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상상의 동물과 오리, 먹이를 주는 어미새와 새끼들, 연꽃 등이 그려져 있다. 배 우측으로는 호위병들이 탄 것으로 보이는 배와, 물소, 몰이꾼들이 묘사되어있고, 뭍 위에는 창으로 맹수를 공격하는 기마인물, 활로 또 다른 맹수를 쏘려고 하는 기마인물 등 수렵 장면들이 역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여기에서도 역시 남벽과 마찬가지로 중심이 되는 인물이 유독 큰 크기로 묘사되어 있다. 학자들은 대체로 이 인물을 당의 황제로 보고 있다. 왜 북벽 전체를 당나라를 위해 할애하고 있는지 그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당시 이 지역이 당나라와 상당히 우호적인 관계에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은 바르후만 왕이 7세기 중반 당나라에서 벼슬을 받았다는 기록과도 부합한다.

    당 고종 영휘연간에 그 땅(康國, 소그디아나)을 강거도독부로 삼고, 그곳의 왕 불호만을 도독으로 삼았다. - <<신당서(新唐書)>>

    북벽의 벽화와 신당서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 당과 소그드의 정치적 관계는 서벽에 등장하는 고대 한국인 사절들의 정체를 규명할 때 특별히 살펴보아야 할 대목이다.


  • 대부분의 그림이 유실된 동벽의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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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화가 그려진 접견실의 출입문이 위치한 동벽에 그려진 벽화들은, 훼손 정도가 심해 해석이 가장 어려운 벽면이다.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는 흔적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출입문 좌측에는 의자에 앉은채 동그란 물체를 향해 손을 내밀고 있는 사람과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 말을 탄 인물 등이 보인다. 출입문의 우측에는 알몸의 아이들과, 물소의 꼬리를 잡고있는 사람이 그려져 있고 물고기, 오리도 볼 수 있어 물가나 습지의 환경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학자들은 소그디아나 남부의 인도, 혹은 조로아스터교에서 말하는 천국을 묘사한 것으로 추정한다.



  •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는 소그드인의 국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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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면에 걸쳐 그려진 아프로시압 궁전 벽화를 순서대로 살펴보았다.

    1300여년이 지나며 벽화의 상당부분이 유실되어 벽화 내용에 대한 완전한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당대 화가가 표현한 뛰어난 묘사와 화려한 색채의 그림을 통해 7세기 사마르칸드 지역의 정치와 외교는 물론, 종교, 의례, 아울러 생활양식과 예술체계까지 엿볼 수 있었다. 또한 우리가 파악할 수 없었던 고대 한국인의 활동 영역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소그드의 시대는 아랍세력의 침공과 함께 막을 내렸지만, 벽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사마르칸드의 번영과 국제성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