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가 멸망하기 전부터 삼국은 일본과 다양한 관계를 맺었다. 일본은 바다 건너에 위치해 결정적인 순간에 우군이 되어줄 수 있는 나라였기 때문에 삼국 모두에게 필요한 존재였다.
삼국은 학자나 승려, 장인들을 보내어 일본의 문화 발전을 도왔고 다양한 기술을 전파하였다. 그 흔적은 일본 곳곳의 문화 유적과 유물들을 통해 지금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백제는 일본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인적 교류도 매우 활발하였다. 백제가 신라와 당에 의해 멸망한 후에는 대규모의 유이민들이 바다를 건너 일본에 들어와 정착하기도 하였다.
이제부터 일본의 고대 유적들과 그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반도와 일본의 공존 관계를 짚어보자.
•소가노 우마코
한반도의 삼국은 각기 일본과 동맹을 맺기도 했고, 또 적대관계를 가지기도 했다. 그러나 삼국시대 내내 백제와 일본은 돈독한 동맹관계를 유지했다. 백제의 뛰어난 학자와 기술자들은 바다를 건너 일본에 가 다양한 문화를 전달했고, 일본은 백제의 든든한 군사적 지원세력이 되어 신라나 고구려가 쉽게 백제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도왔다.
백제와 일본의 친밀한 관계로 인해 백제왕실도 쉽게 일본을 오갔고, 기술자 가문도 일본에 들어와 둥지를 틀었다. 일본에 아예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발전된 기술을 이용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도래인(渡來人, 도라이진)’으로서의 정체성을 다져나갔다. 선진기술을 보유한 도래인은 마침내 정치권력의 정점까지 올랐는데, 그가 바로 소가노 우마코(蘇我馬子)다.
소가노 우마코는 쇼토쿠 태자를 정치에 입문시킨 장본인이며, 본격적으로 백제의 문화를 일본에 심은 사람이다. 또한 소가씨는 천황가의 외척이 되어 정치 실권을 장악하였다. 소가(蘇我)씨 가문은 6세기 이후 100여 년 동안 일본을 사실상 지배했던 유력한 호족이었다. 그 조상은 백제에서 건너온 도래인이라고 전해진다. 그중 소가노 우마코는 한반도를 통해 불교를 받아들이고 권력을 강화하며 쇼토쿠 태자에게 섭정을 맡겼다. 그러나 소가노 우마코의 손자인 이루카가 권력을 독차지하려 천황 집안을 해하려 하자 반대세력에 부딪혔고, 그 속에서 몰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