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초여름, 아무에게도 도굴되지 않은 아름다운 벽돌무덤이 발견되었다. 이 안에서는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찬란한 부장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세밀한 조각기술의 최고봉인 금동신발, 금동관, 단아한 토기들과 금수저, 익살스러운 석수 등, 1400년 동안 잠들어 있던 백제의 예술품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 무덤의 주인은 정치적 다툼의 한가운데서 태어나 왕의 자리에 올랐던 무령왕주1) 의 것이었다.
이름은 사마(斯摩/斯麻) 혹은 융(隆)이었는데,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동성왕(東城王)의 둘째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문주왕(文周王)의 동생인 곤지(昆支)의 아들로 동성왕(東城王)과는 이복형제 사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무령왕은 “신장이 8척이고, 눈매가 그림과 같았으며 인자하고 너그러워서 민심이 그를 따랐다”고 한다. 그는 501년(동성왕 23)에 동성왕이 사냥에 나갔다가 좌평(佐平) 백가(苩加)가 보낸 자객에게 칼에 찔려 죽자 왕위를 계승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일본의 역사서인 『일본서기』에는 동성왕의 이복형제로, 일본에서 태어난 것으로 등장한다.